조단위 자구안 필요한 대한항공, 제한된 원매자·모호한 의지 걸림돌
입력 2020.05.13 07:00|수정 2020.05.14 09:49
    올해 3.8兆 부족…국책은행 1.2兆 감안해도 조단위 자금 필요
    1兆 유상증자 예상…송현동 부지 및 알짜 사업부 매각 가능성
    정비 사업은 원매자 한정…하반기 들어야 실효적 대책 나올 듯
    • 대한항공은 정부 지원을 받는 대신 조단위 자구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실효성에는 의문 부호가 붙었다. 거론되는 매각 자산은 이미 시장에서 잠정적으로 가격이 정해지거나 마땅한 원매자를 찾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정부 지원이 예정된 상황이라 자구안 마련 의지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24일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원 내역은 화물운송운임 기초 자산유동화증권 인수(7000억원), 운영자금(2000억원), 영구채 인수대금(3000억원) 등이다.

      채권단은 신규 자금을 지원하며 대한항공이 1조원의 유상증자, 송현동 부지 매각, 사업부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권단이 추산한 대한항공의 올해 필요 자금은 3조8000억원이다. 하반기 기간산업안정자금 및 다른 지원안을 감안하더라도 대한항공 자체적으로 조단위 자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거론되는 주요 자구안은 송현동 부지·제주 파라다이스 호텔·미국 LA 윌셔그랜드센터·그랜드하얏트 인천·제주 칼호텔 등 유휴 자산 매각, 최대 1조원의 유상증자, 대한항공의 기내식 및 항공기정비(MRO) 사업부 매각 등이다. 회사 관계자는 “여러 안을 검토 중이나 정해진 바는 없다”고 밝혔다.

      내놓을 수 있는 자산은 많지만 얼마나 실효성 있는 자구안을 마련할 것인지는 의문이 많다.

      당장 도심 한복판의 알짜 땅인 송현동 부지는 서울시가 눈독을 들이며 가치가 모호해졌다.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를 인수해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큰 돈을 쓸 생각은 없다. 시장에선 6000억원 이상이 거론되는데 서울시가 바라는 금액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20년 이상 별다른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던 부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대기업이 나서 비싼 값을 쳐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잠재적인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는 호텔들은 코로나 여파로 가치가 크게 낮아진 상황이다. 당장 고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상황에선 제대로된 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다. 특히 LA 호텔의 경우 수천억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 매각을 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자금 유입,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대한항공의 기내식사업, 항공우주사업(정비, MRO) 등 사내 알짜 사업부 매각인데 이 역시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작년 기내식 제조 및 판매 사업으로 9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 비중에서는 1% 미만이지만 안정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만 기내식 사업부는 전적으로 계약 내용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아시아나항공처럼 30년 장기로 기내식을 공급할 권리를 주는 경우라면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겠지만 단기로 계약을 맺었을 때는 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보통 5년 전후로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는다는 점, 영업이익률이 극히 낮은 사업부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매자들의 이목을 끌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과 외부 항공사에 기내식을 공급하는 비율도 베일에 싸여 있다.

      가장 핵심이 될 자산은 대한항공의 항공우주사업이다. 비행기 정비나 창정비, 비행기 부품 제조 등을 하는 사업부다. 대한항공이 국내 유일의 정비 사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가치있는 사업부로 꼽힌다.

      해당 사업은 대한항공 비행기 관련 정비 외에 미군 창정비, 군용 정비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의 작년 매출은 7279억원, 영업손실은 324억원을 기록했다. 이 실적이 대한항공을 제외한 외부 매출이라고 보면 대한항공 정비까지 포함할 때 매출 규모가 훨씬 크고, 이익률도 양호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해당 사업의 기업가치(EV)가 2조원대로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미군이나 우리 군과 관련한 사업도 있다 보니 관심을 가질 원매자가 한정된다는 점은 부담스럽다. 대한항공이 항공우주사업을 떼내서 판다 쳐도 방산 관련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면 인수하기 쉽지 않다. 한화나 한국항공우주(KAI) 정도가 꼽힌다.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투자자(FI)엔 경영권 지분을 넘기긴 어렵다.

      사업부 지분 일부만 팔자니 부채비율 감축이나 유동성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비 역량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군 관련 정비와 민항기 정비 업무를 분리하는 것은 매각 가치 하락을 불러오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이 자구안을 마련하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당장 급한 불은 껐으니 이후 자금 사정이 급해져야 진정성 있는 자구안이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단 흐릿한 자구안을 내놓은 두산그룹과 유사한 그림이다. 국책은행은 사업부 매각을 기대하는데, 회사는 소문이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정부는 항공을 7대 기간산업으로 꼽아 지원 의지를 밝혔다. 국책은행이 조단위 자금 투입 계획을 밝혔고, 앞으로도 자금 지원을 멈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대한항공은 최대한 자구안을 마련하려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반드시 성사 가능성을 담보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다. 즉 성의는 보이더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기내식 사업을 팔 생각이 크지 않고 팔더라도 지분 일부만 내놓는다는 분위기”라며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실효성 있는 자구안은 올해 하반기 들어 급해진 후에야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 역시 “대한항공은 일단 송현동 부지와 LA 호텔을 우선 매각 대상으로 내놓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