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덮친 M&A 시장…밸류에이션 간극 커 줄줄이 실사 중단
입력 2020.05.27 07:00|수정 2020.05.28 07:25
    현금 확보 총력 기울이는 대기업들
    자산 매각 협상은 진행, 결론 못낸 경우가 대다수
    2019 밸류 원하는 셀러 vs 싼값에 투자하려는 원매자
    PEF 포트폴리오 엑시트도 답보 상태
    인수금융 시장 위축도 한 몫
    • 코로나의 여파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도 타격을 입혔다. 현금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사업부 또는 자회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매수자들이 기업 실사에 나서지 못하면서 올 1분기 성사된 M&A 거래는 사실상 전무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전의 매물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기업들과 한풀 꺾인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려는 매수자들 사이에 간극이 벌어진 점도 M&A 성사 소식이 들리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신세계그룹의 급식·레스토랑 사업인 신세계푸드, CJ그룹의 제과 브랜드 뚜레쥬르(CJ푸드빌)와 영화사업 CJ CGV 등 최근 대기업 발 자회사 매각 추진 소식이 종종 들려오지만 정작 공식화하거나 완료된 거래는 없다.

      신세계그룹은 실제로 1~2년 전부터 신세계푸드 매각을 위해 EY한영, 최근엔 삼일PwC와 함께 매수 희망자를 알음알음 찾아나선 바 있다. 몇몇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신세계그룹과 거래가격에서 간극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의 영업이익은 매년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년 전(2017년, 307억원) 대비 20% 이상 감소한 230억원을 기록했다. 신세계그룹이 희망한 매각 금액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기준 10배 수준인 2000~3000억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가격 갭이 상당했는데, 코로나의 여파로 실적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현재는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이란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푸드는 지난해 1분기 3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올해는 같은 기간 3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거래를 심도있게 검토했던 잠재 매수자들도 실적이 급격히 악화한 탓에 실사를 진행하는 게 무의미한 상황이기도 하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의 주력 사업이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세계그룹 측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왔다”며 “현재 상황에선 거래가 중단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 CJ그룹의 대표적인 영화 사업인 CJ CGV는 코로나의 충격을 고스란히 입은 업체 중 하나다. 최근엔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자본 긴급 수혈에 나섰다. 이와는 별개로 한때 경영권을 매각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매각 작업을 공식화 하기는 한계가 있어, 잠재 매수자를 대상으로 인수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그러나 시기를 놓쳐다는 평가를 받는다. ㈜CJ 지분율은 약 40%로, 현재 시가총액(약 5000억원)을 고려하면 지분가치는 약 2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2018년까지만해도 시가총액이 1조5000억원 수준에 달했기 때문에 ㈜CJ의 지분가치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조 단위를 넘어서는 영화 사업 거래가 성사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1분기 급격하게 꺾인 실적, 그리고 실적 회복 시기를 점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그룹의 눈높이가 크게 낮아지지 않는 이상 매각 성사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렵단 평가가 나온다.

    • 이 같은 현상은 비단 대기업 발 매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몇몇 PEF들도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위해 포트폴리오의 정리가 필요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매각 협상을 중단하거나 훗날을 기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H&Q AP의 대표적인 포트폴리오인 ‘잡코리아’는 올해 기대되는 대형 M&A 중 하나였다. 지난해 말부터 프라이빗 거래 형식으로 매각 작업을 조용히 진행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확산한 이후부턴 거래가 사실상 답보상태에 빠졌다. 잡코리아에 앞서 투자 회수가 예상됐던 H&Q의 ‘플레이타임’ 또한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진 이후에 매각 업이 다시 본격화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VIG파트너스가 2016년에 인수한 창호업체 ‘윈체’도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매각을 추진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공개 매각은 진행하지 않았으나 잠재 후보들의 제안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매각 작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이 보유한 수원여객도 최근까지만해도 전략적투자자(SI)와 손잡은 PEF 1곳과 단독으로 참여한 재무적투자자(FI) 1~2곳이 관심을 보였지만 최종적으론 협상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지난해 외국계IB를 주관사로 선임해 대흥농산 경영권을 매각하고 있지만 원매자를 찾지 못한 상태다.

      IMM PE는 할리스커피와 대한전선 매각을 위해 잠재 매수 희망자를 찾고 있다. 거래 성사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특히 할리스커피의 경우, 코로나의 여파를 직접 받은 대표적인 업종 중 하나로 결국 원매자와 밸류에이션을 두고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결국 현재의 상황은 매각자, 그리고 원매자 간 밸류에이션의 간극이 크다는 데서 시작한다. 코로나 사태를 일시적인 단기 악재로 여기고 싶은 매각측과 최근 실적을 기반으로 좀 더 낮은 밸류에이션을 적용해 투자하고 싶은 원매자 간의 눈높이 차이다. 대한항공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난해부터 최근까지도 상당히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 제안을 했으나, 그룹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외부 투자는 없는 상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로 주저앉은 기업의 실적이 회복세로 돌아설지, 아니면 이 같은 현상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이다”라며 “투자자가 타겟컴퍼니의 회복세를 확신하고 과감하게 투자를 집행하거나, 매각 측이 정말 급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시장에 나와있는 M&A 거래가 당분간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수금융 주체들의 위축은 원매자들이 과감하게 투자 집행을 할 수 없는 배경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사실 유동성이 넘치는 대형 PEF는 주요 M&A 거래에서 1순위 원매자로 손꼽힌다. 쌓아놓은 자금이 많더라도, 거래 금액의 전량을 블라인드펀드만으로 집행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M&A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인수금융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개별 PEF의 규모가 커지고, M&A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인수금융 시장의 저변도 확대했다. 과거 시중은행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인수금융은 국책은행, 초대형IB 등으로 주체가 넓어졌다.

      코로나의 확산으로 금융시장은 경색했고, 금융회사들은 직접투자, 외부 자금 집행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인수금융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초대형IB 인수금융 담당자는 “LP들로부터 LOC를 받고 인수금융을 주선하는 경우 외에는 회사의 인수금융 목적으로 회사의 자금이 직접 집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의 처지가 비슷해 신디케이션을 모을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에 M&A 거래도 활기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