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돈에 발목 묶인 조원태 vs 주도권 잡는 권홍사, 한진칼 분쟁 새구도
입력 2020.06.01 07:00|수정 2020.06.02 09:55
    26일 반도그룹 추정 기타법인 지분 2% 추가 취득
    주주연합 KCGI, 반도그룹 지분율 차 0.4%p 내외
    자금력 단연 앞서는 반도그룹
    주주연합 주도권 및 조원태 회장 대결구도 변화에 관심
    • 정기 주주총회 이후 잠잠했던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 할 조짐이다. 한진그룹은 정부의 긴급자금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고, 이 틈을 타 반도건설로 추정되는 오너 견제 세력은 지분율을 늘렸다. 주주연합 내에서 반도그룹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존 조원태 회장과 KCGI의 대결 구도 양상도 변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진칼의 주가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달 주당 11만원까지 도달했던 주가는 경영권 분쟁이 소강상태에 돌입하자 올해 7만원 중반까지 빠졌다. 그러나 이달 26일, 기타법인의 강한 매수주문이 들어오며 주가는 다시 10만원에 근접했다. 지난 26일 기타법인은 1100억원어치의 한진칼 주식을 사들였다. 과거 반도그룹이 한진칼의 지분을 매집하던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경영권 분쟁의 주체들 가운데 1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쏟아부을 여력이 되는 곳은 사실상 반도그룹이 유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 26일 거래된 주식은 한진칼 전체 지분의 약 2%에 해당한다. 반도그룹이 해당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면, 주주연합의 지분율은 약 44.9%까지 늘어나게 돼 조원태 회장 우호지분(약 41.4%)을 앞서게 된다.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선임요건은 참석 주식의 절반 이상이기 때문에 주주연합의 지분율이 50%에 근접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주주연합이 올해 사들인 한진칼 주식은 지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갖지 못했다. 이에 주주연합은 조원태 회장의 우호지분에 밀려 단 한명의 추천 인사도 이사진에 진입하지 못했으나, 내년 주주총회부터는 상황이 다소 반전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상황에선 조원태 회장이 지분율을 크게 늘릴 것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오너일가의 자금력을 차치하고 대한항공이 정부로부터 조 단위 지원을 받은 상황에서, 오너일가가 경영권 방어에만 주력하는 모습을 내비치긴 사실상 쉽지 않다는 평가다. 한진그룹은 현재 송현동 부지를 비롯한 자산매각에 주력하며 재무구조개선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든든한 우군이었던 델타항공도 글로벌 항공업황이 휘청이는 상황에서 조인트벤처(JV) 항공사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기가 쉽지 않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국책은행에 대한항공의 지분을 내주면서까지 자금 지원을 받았는데 조원태 회장이 한진칼 지분을 늘리면서 그룹 경영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연출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주주연합 측에서 조 회장의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빈틈을 노리고 추가지분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도그룹이 한진칼 지분 2%를 추가로 확보하면 그동안 주주연합의 대표격이었던 KCGI와 지분율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현재 KCGI의 지분율은 약 19.4%로 반도그룹과 약 0.4%포인트 차이로 추정된다.

      반도그룹이 KCGI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주주연합 내에서 주도권의 양상도 다소 변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주주연합(KCGI·조현아 전 부사장·반도그룹)의 주체들은 경영권 분쟁 초기엔 각각의 목소리를 냈다. KCGI가 조원태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당시 조현아 전 부사장은 그룹 측에 호텔사업과 항공사업에 대한 경영권을 요구했다. 반도그룹은 자금력을 앞세워 독자적으로 지분율을 늘렸고 연합을 맺기 전 송현동 부지,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범일동 한진터미널 등의 개발권 등을 요구했다. 주주총회에 앞서 연합의 주체들은 각각 이사를 추천하면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내비치기도 했다.

      공격적으로 지분율을 늘리는 반도그룹과 달리 KCGI는 다소 신중한 모습이다. 한진칼의 주가가 크게 올라 주식담보대출에 대한 부담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대한항공의 지분율을 직접 보유하게 된 만큼 경영권 분쟁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란 지적도 따른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에 대한 한진칼의 막강했던 지배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에 조원태 회장과 주주연합 모두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이 올해와 같이 격화하면 추후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에 대한 정부의 입김도 상당히 세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