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은행실적, 핵심은 '대손비용'...정부發 '돈벼락'에 흐려지는 비관론
입력 2020.06.17 07:00|수정 2020.06.18 15:04
    마이너스 경제성장률ㆍ기준금리 인하 현실화했지만
    정부 정책과 유동성 지원에 '최악은 없을것' 낙관 득세
    NIM 하방 경직성 강하고 은행 대출 자산 3~4월 폭증
    "유예된 부실, 3분기 이후 터질 수도" 경계 목소리도
    • 하반기 은행 실적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한 쪽에서는 20% 이상 이익이 줄어들 거라며 신중론을 펼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보수적으로도 한 자릿 수 감익에 그칠 거라며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엇갈림의 핵심은 '대손비용'이다. 순이자마진(NIM)이나 기타 영업수익 추정치는 비등비등하다. 대손비용으로 얼마를 반영하느냐, 다시 말해 '부실'이 얼마나 생기느냐를 두고 2조원 가까이 순익 추정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낙관론의 바탕엔 결국 정부가 추경으로 퍼부은 예산이 대출의 부실화를 막아줄 거라는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최근 주요 대형금융주 주가가 급등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9월까지는 정부의 원금 만기 연장과 이자 납부 유예 정책이 적용되는만큼, 11월 발표될 3분기 실적까지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시중은행들은 총 13조8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시장 컨센서스(추정 평균치)는 12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1% 줄어드는 수준에서 형성돼있다.

      3월말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땐 10조원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탄력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리서치센터에서는 보수적으로 10조원 중후반대의 순익 전망치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어든 수치다.

      최근 '우려보다 은행 실적이 괜찮을 것'이라는 전망이 급부상했다. 올해 은행 순익이 12조 중후반대로, 지난해 대비 한 자릿 수 하락에 그칠 거란 예상이다. 키움증권은 이달 초 은행 업종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확대(Overweight)로 상향하며 '아시아 금융허브를 향하여!'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레포트를 내기도 했다.

      3월의 암울한 전망대로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 4월 경상수지는 31억달러 적자로 9년만에 최대 규모의 적자를 냈다. 5월 통관기준 수출은 지난해 5월 대비 23.6% 줄어들며 두 달 연속 두 자릿 수로 감소했다. 1분기 국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3%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2020년 국내 경제성장률을 기존 2.1%에서 -0.2%로 수정했다. 이조차 '코로나19의 2차 대확산'이 없다는 전제 하의 추정치다.

      한국은행은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75bp(0.75%포인트) 인하했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0.5%로 제로금리에 가깝다. 기준금리 인하는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은행들은 지난해 라임 사태 이후 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 이익 확대가 어려워졌다. 예대마진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NIM 악화는 결국 실적 급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왜 시장에는 낙관론이 팽배한 걸까? 180조원의 금융지원 패키지와 35조원 규모의 3차 추경 기대감 등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쏟아지고 있는 돈의 힘'이 비관론을 지워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침체 우려로 장기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있다. 은행 NIM은 올해 4분기 저점을 지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1.1~1.2% 사이에서 바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주요 은행 NIM이 1.2~1.4% 안팎이다. 장기 금리가 버텨주며 NIM에 하방 경직성이 형성되고 있다.

      자금수요 폭증에 정부의 유동성 공급 정책이 맞물리며 대출 자산은 급격하게 늘었다. 3~4월 두 달 동안에만 은행 대출이 61조원 늘었다. 4월에만 32조7000억원이 늘었는데, 이는 월 단위 역대 최고치다. 경기침체와 부실 우려가 커지면 대출을 줄여야 하는데, 정부 정책에 따라 은행이 유동성 지원 창구가 되며 오히려 자산이 급증한 것이다. NIM이 떨어지더라도 대출 자산이 늘면 수익성은 지킬 수 있다.

      2019년말 기준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있는 도소매ㆍ음식숙박업종 관련 은행 전체 여신은 130조원 규모다. 이 중 소상공인(SOHO) 대출 규모는 67조원이다. 당초 이 중 상당부분이 부실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단 정부가 9월까지 원금 상환 및 이자 납부를 유예시키며 '정상 여신'으로 분류 가능하도록 했다. 이후 정책 자금 지원이 이어지고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 이 여신들이 부실화되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

      문제는 이런 낙관론들이 결국 '그렇게까진 안되겠지'라는 가정 아래 세워졌다는 점이다. 경기 자체가 침몰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 지원만으로 도소매 등 취약 업종들이 버틸 수 있느냐,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 수출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는 희박해진 상황이다. 3분기까지 정부의 상환 유예 정책으로 가려져있던 부실이 곪아 내년에 폭발할 가능성 역시 현 시점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진 2011년 관련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률이 3분기까지 8%대였다가 4분기 20%대로 폭등하며 금융시장에 쇼크를 줬던 적이 있다"며 "지금의 낙관론은 일단 11월까진 아무런 부정적 사건도 터지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펼쳐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