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PEF 파트너들...지배구조는 역시 '1인 독재'가 최고?
입력 2020.06.17 07:00|수정 2020.06.18 15:04
    10년 넘게 일다하다 돌연 '결별'준비
    "돈 벌면 싸운다" 통설 적용되는 셈
    운용사 투자철학과 색깔 유지가 관건
    • 국내 활동 중인 사모펀드(PEF) 사이에서 창업멤버 혹은 파트너들의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은 몇몇 회사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국내 PEF 역사가 15년을 넘어감에 따라 유사사례가 늘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에서 고수익을 냈던 어피너티에서는 파트너 중 한 명인 이규철 대표가 퇴사를 논의 중이다. 이 대표는 로엔엔터테인먼트와 SSG닷컴, 락앤락 등 어피너티의 주요 투자를 이끌었던 인물. 파트너 간 내부 갈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1세대 PEF인 VIG파트너스에서는 안성욱 대표가 다른 파트너들과 결별을 논의 중이다. 펀드의 주요 투자자(LP)들에게는 해당 내역이 전달됐다. 또 임석정 대표가 설립, 조단위 규모 모멘티브 M&A를 단행한 SJL파트너스는 박기찬 부대표에 이어 태효섭 부대표도 퇴직을 예고했다. 성과급(Carried Interest) 배분 문제가 원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최근 일부 대형 PEF 운용사에서 파트너들의 분리 혹은 독립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은 신설회사 혹은 업력이 짧은 회사가 아닌, 창업자들끼리 오랜 세월을 보내고 긴 투자레코드를 보유한 회사들에서 일어나는 추세다. 여러 원인과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운용사와 파트너가 상당한 부(富)를 쌓았다는 점이 우선 거론된다. "돈을 벌면 이를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싸우게 된다"라는 통설이 적용되는 셈. 여기에 창업 1세대의 활동이 줄어들고 2세대 파트너가 경영과 투자 전면에 나서면서 회사 색깔이 바뀌거나 내부 관리 시스템이 예전같지 못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어피너티의 경우 이 두 가지가 겹친 사례로 풀이된다. 박영택 회장-이철주 부회장 라인의 일선 활동이 줄어들고, 국내 파트너들이 회사 관리를 맡게 된 이후 파트너들간 '알력'은 오랫동안 업계에선 회자됐다. 관리시스템 부재도 왕왕 거론됐다.

      어피너티 내부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회사 1, 2인자들이 조직 서열 정리를 제대로 못해둔 상황이다 보니 젊은 파트너들 사이에서 갈등이 수시로 발생했다"며 "회사 어소급 멤버들이 거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만들어야 할 리포트조차 외주로 맡겨 프리젠테이션 전날 매칭작업을 할 정도로 외부 리소싱에 기대는 일도 잦았다"라고 평가했다.

      비단 어피너티처럼 큰 회사가 아니더라도 외부 임원을 채용, 바이아웃 거래를 성사시킨후 발생한 '성과급'배분을 두고 대표이사와 임원들 사이의 소송이 벌어진 일은 부지기수다. 해당 임원은 성과급을 더 요구하고, 대표나 회사측은 성과급을 주기 어렵다면서 해당 임원을 쫓아낸 후 법원을 찾은 사례들이다.

      '투자철학의 부재' 혹은 '인내심의 한계'도 파트너들의 이탈 요인으로 거론된다.

      모 PEF 운용사 대표이사는 "사모펀드 운용사는 최초 설립 당시 '필요'에 따라서 여러 이력을 갖춘 사람들이 각 포지션을 맡아 뒤섞인 경우가 많다"며 "처음에는 회사가 굴러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사이에 투자철학의 '차이'가 눈에 띠는 경우가 늘어나기도 한다"라고 평가했다.

      즉 창업 멤버들이 함께 일하는 세월이 길어지는 동안 그간 드러나지 않은 개개인의 성향과 색깔이 구체화되면서 파트너들간 충돌이 빚어진다는 것. 다만 회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서로 인내하다가 어느 정도 이익을 내고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충돌을 참지 못하고 독립을 꿈꾸는 파트너들도 생긴다는 의미다.

      특정 파트너의 독보적인 역할이 줄어들면서 회사를 떠나는 일도 있다. 설립 초기에는 특정 파트너에게 투자자 유치나 관리를 의존했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의존도가 줄어든 경우다. 이른바 '용도폐기'설이다.

      업계에서는 도용환 회장이 세운 스틱인베스트먼트가 파트너들이 가장 많이 퇴사하고 신설회사를 가장 많이 차린 곳으로 평가받는다. 스틱이 자랑하던 '중동지역 자금유치'를 달성해낸 임정강 이스트브릿지 대표를 비롯, 각 영역에서 스틱 출신 대표들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다만 이로 인해 스틱을 투자업계 '사관학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반대로 파트너들이 오래 있지 못하고 떠나는 회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면서 일선에서는 PEF라는 특수 조직은 오너십에 기반을 둔 확고한 제왕적(?) 지배구조가 회사의 안정성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색깔 유지는 확실하다는 것.

      다만 1인 독재형 지배구조가 유지되려면 창업자의 끊임없는 내부 관리와 파트너간 합리적인 업무 영역배분, 그리고 확실한 성과급 배분과 업계 최고 수준 '연봉'이 필수조건으로 거론된다.

      이러다보니 PEF의 경영 승계 문제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PEF 역시 혼선 없는 승계를 대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꼽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운용사가 지닌 색깔과 철학이나 희석되는 경우라면 투자자(LP)들이 과연 선호하겠느냐는 지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