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C 유증 카드, 자발적 구조조정 신호탄
입력 2020.06.19 07:00|수정 2020.06.18 17:09
    항공사 절반 이상, 유상증자 나서
    정부 지원 소외된 LCC는 '체력 시험대'
    유증·매각 실패시 사실상 구조조정
    • 자본잠식 위기에 빠진 항공사들이 결국 유상증자 카드를 꺼냈다. 마지막 희망줄이었던 정부 지원을 확신하기 어려워지면서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 외엔 선택지가 사실상 사라졌다. 투자업계에선 대한항공을 제외하면 흥행 불발을 예견하고 있다. "LCC는 투자 이점이 없을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증자가 집중되면 그나마도 분산될 것"이란 예측이다. 시장논리에 입각한 '자발적'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국내 LCC 7곳 중 4곳이 유상증자를 추진 또는 검토 중이다. 제주항공(1700억원)과 티웨이항공(642억5000만원)이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추진 중이고, 지난해 11월 출범한 신생 LCC 플라이강원(165억원)은 3자배정 유증을 추진 중이다.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기존 주주들의 추가 투자 의지가, 플라이강원은 기관투자자 섭외 성공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에어부산도 유증과 전환사채(CB) 발행을 놓고 고민 중이다.

      유증은 LCC가 자본확충을 위해 꺼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이들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항공사(FSC)들에 비해 ▲정부 지원 수혜에서 벗어나 있고 ▲항공화물운임 같은 추가적인 매출 요소가 없고 ▲현금 확보를 위해 매각을 검토할 만한 자산도 없다.

    • LCC들은 이미 작년부터 공급과잉과 부족한 경쟁력으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코로나는 항공업계 재편을 잠시 미룰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에 대규모 정책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기업들도 '지원받을 때까지 일단은 버티자'는 전략을 견지했다.

      하지만 정책 지원은 대한항공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4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대상에서 LCC는 사실상 배제됐다. 금융당국은 LCC를 위한 별도 기안기금 기준은 마련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LCC 대부분 회사채를 발행할 여력이 없어 채권시장안정펀드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안기금 대상에도 제외되면 LCC들이 받을 수 있는 정책자금은 없다. 업계 내부에서도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놨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LCC는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직접 자금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투자자들도 항공사 유증에 참여할지, 참여한다면 어느 곳을 선택할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시선은 냉담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LCC는 FSC처럼 화물 수송으로 여객 손실을 만회하기 어려운 데다 정부 지원에서도 소외돼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 물론 코로나 종식 기대감이 반영된 증시에 기대봄직하지만 우호적인 분위기가 계속 유지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이미 플라이강원은 투자자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정이 대거 7~8월에 집중된 만큼 투심이 분산할 수 있다는 점, 특히 대한항공에 관심이 집중되는 점도 우려 요소다. 한 증권사 항공 담당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과거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를 받았는데 이번엔 정부 지원과 흑자전환 기대감에 힘입어 지난해 연말 기준 PBR 1.2배 수준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한항공 때문에 같은 시기 증자에 나설 다른 LCC는 이목을 뺏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구안조차 내놓지 못하는 곳도 있다. 자본잠식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에어서울은 대주주인 아시아나항공에 사실상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다. 내년 1월말까지 계약기간 동안 필요 시마다 자금을 대여하는 내용의 계약을 최근 체결했는데 이번 계약까지 포함하면 총 대여잔액은 400억원에 이른다.

      이스타항공은 임직원 임금조차 스스로 해결이 어렵다. 이런 사정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상직 의원 등 대주주가 자구책 없이 제주항공에 모두 떠넘기려 하면서 양사 간 갈등을 빚었고 투자업계도 딜이 무산될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아시아나항공의 분리매각 가능성은 또다른 변수다. 제주항공 입장에선 이스타항공과 에어부산 등 다른 LCC를 두고 원점에서 고민할 수 있다.

      LCC들이 추진하고 있는 증자와 M&A 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항공업계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주로 정부가 담당했던 산업 구조조정 '공'이 자본시장으로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업계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대한항공 외에 큰 관심이 없고 LCC들이 시장성 조달을 한다는 것은 시장 주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며 "독자생존이 어려운 곳들은 서로 합쳐 시장 파이를 줄이려고 하고 거기에서도 배제된 곳들은 결국 파산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큰 틀에서는 FSC들도 다르지 않다. 대한항공은 정부 지원을 받는 동시에 자산 매각, 증자를 통한 시장성 조달을 꾀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시장이 혼합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셈이다. 산업은행 주도로 매각 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은 딜 무산 가능성이 열렸다. 재매각, 분리매각, 기업회생절차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될 경우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한계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