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 간택 못받으면 회생법원서 도산…하반기 구조조정 양극화 우려
입력 2020.06.19 07:00|수정 2020.06.23 09:06
    지원 조건 까다롭고 재원 한정
    실물 경제 악화·경영 부실 누적
    여신 만기 도래까지 더해 '휘청'
    회생절차 밟아도 대부분 파산
    • 하반기부터 부실기업의 민낯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국책은행을 앞세운 지원 정책도 쏟아지는데 모든 기업들이 혜택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원 조건은 까다롭고 재원도 한정돼 있어 수혜는 소수의 선택받은 기업들에 몰릴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의 눈에 들지 못한 기업들은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다 회생법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국내에서 코로나 대응은 전적으로 국책은행의 책무가 됐다. 민간 금융회사들은 경기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위기업종과 중소업체의 여신을 줄인다. 위기 대응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여신의 만기를 늦추거나 상환을 재촉하지 않는 정도 성의만 보이고 있다. 국책은행들도 그 이상의 지원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국책은행들은 기간산업안정기금 설립, 회사채 신속인수제, 저신용등급 회사채 매입 등 각종 지원책을 주도하고 있다. 실효성을 따지기 보다는 일단 쓸 수 있는 수단을 모두 펼치는 분위기다. 정부로서도 믿을 구석은 국책은행뿐이다보니 자본금을 더 넣어주고 규제도 개선해주는 등 힘을 실어주고 있다.

    •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국책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편의를 최대한 봐준다지만 최소한의 서류는 확인하고 심사도 거쳐야 한다. 구조조정 병실이 많아졌다고 손짓하지만 검토 역량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금력도 무한하지 않다. 자본시장에서 돈을 열심히 벌어 좋은 곳에 쓰겠다는 다짐은 무의미해졌다. 정부가 출자를 더 해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세금이고 나라 빚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나라 빚이 너무 빨리 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라가 언제까지 돈을 대줄 수는 없다. 국가 경제가 휘청하면 국책은행의 자금 조달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사정이 이러니 국책은행의 지원도 결국은 일부 덩치가 크거나 주목도가 높은, 그도 아니라면 일시적 위기거나 기존의 여신이 많은 곳에 우선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두산중공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니, 아시아나항공은 그간 들어간 돈이 많으니 살려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M&A의 파트너인 현대중공업은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이 직접 조선소를 찾았고, 산업은행은 그린론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국책은행의 총애를 받고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지원 산업인 항공과 해운엔 앞으로도 자금이 계속 투입돼야 한다. 새로운 대마불사 기업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하반기 이후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누적된 부담이 한꺼번에 터질 가능성이 있다.

      올해는 각종 지원책과 유동성 풍년 속에 기업들의 부실이 잠시 가려져 있을 뿐 작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충격이 본격화한 2분기의 저조한 실적이 확인되면 기업 투자 심리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 금융사들이 일시 연장해준 여신 만기도 속속 도래한다.

      대형 법무법인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기업들은 보통 1분기까지는 전년도에 마련한 일감으로 먹고 살지만 올해는 신규 수주가 줄어 2분기 이후 실적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며 “잠시 채권 추심을 멈췄던 금융회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도산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들 입장에선 그렇잖아도 좁은 국책은행의 출입문이 더 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국책은행은 지원에 앞서 유상증자 등 자구 노력을 먼저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 기업이 국책은행 지원 없이 주식자본시장(ECM)에서 투자를 유치하거나 채권을 찍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회생절차(법정관리) 뿐이다.

      그래도 과거의 회생절차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은, 빚만 정리해주면 영업을 통해 살아날 수 있는 곳들이 찾는 경우가 많았다. 회생법원도 수년간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 사정에 밝은 기존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선임하거나 패스트트랙 방식을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지금부터 법원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은 법원이 종착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성동조선해양은 4수 끝에 새로운 주인을 찾기도 했지만 이는 드러나지 않은 알짜 자산이 많아 가능했던 극히 이례적인 사안이다.

      당장 돈을 벌어 이자도 못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외감기업은 2017년 28.3%, 2018년 31.3%를 거쳐 지난해 34.1%까지 늘었다. 코로나로 실물 경제까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선 기업을 살려준들 오래 명을 잇기 어렵다. 법원도 법무법인도 하반기 도산 기업 증가에 대비해 일손 배분을 새로 하는 분위기다.

      다른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모든 기업이 국책은행 지원을 받을 수는 없다”며 “여기서 소외된 기업들은 회생절차에 들어오더라도 파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