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자 반등도, 2차 대유행도 아니었다...오로지 '연준 입'에 달린 글로벌 증시
입력 2020.06.22 07:00|수정 2020.06.24 09:42
    연준 실제 유동성 집행에 의구심...11일 급락
    새로운 유동성 공급 정책 내놓자 이내 회복
    국내 증시 20개 우선주 상한가 등 꼭지 징후에도
    '유동성 광기'ㆍ연준 움직임 등 향후 전망 쉽지 않아
    • "최근 증시가 한번 크게 출렁였죠. 대세 하락이 드디어 시작됐나 겁먹은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지금은 다시 전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죠. 코로나19 2차 대유행마저 '추가 유동성 공급 호재'로 인식하는 시장입니다. 변수는 오로지 연준(미국연방준비제도;Fed) 하나 뿐인 것 같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유동성 광기. 최근 증시를 설명하는 말 중 하나다. 나스닥에 이어 코스닥마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고점을 갱신하며 이 같은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시장의 관심이 커졌다.

      최근 뉴욕 증시가 5% 하락하며 코스피도 덩달아 급락하자, 일각에서는 그간 외쳐오던 '대세 하락'이 시작됐다고 외쳤다. 급락의 원인을 두고 중국과 캘리포니아주 등지에서 시작된 2차 대유행을 꼽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증시는 2차 대유행 가능성마저 호재로 인식하고 있다. 연준을 비롯해 각국 정부가 추가로 돈을 풀 가능성이 커지는 까닭이다. 미국의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매주 수백만건씩 늘어날 때마다 증시도 덩달아 뛰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의 경기침체 우려 발언이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역시 논리적으로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분석이다.

      미국 뉴욕 연준이 일주일에 두 차례 발표하는 '주간경제상황지표'(WEI)는 미국 경기가 4월 말~5월 초를 저점으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이너스(-)11.1%까지 떨어졌던 경제총생산(GDP) 전망치는 현재 저점 대비 20% 이상 오른 -8.39%까지 회복됐다.

    • 오히려 지금은 이런 경기 회복 기대감조차 지수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지시간 지난 18일 발표된 5월 미국 소매 판매 지수는 17.7로 3월 -8.2, 4월 -14.7을 크게 넘어서는 '서프라이즈'를 보였다. 그러나 지수는 횡보하며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다우지수를 비롯해 주요 지수는 보합세로 거래를 마감했다.

      코로나19도, 경기회복 기대감도 아니라면 그럼 대체 지금 증시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 의지를 지적한다.

      당초 연준은 지난 3월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에 따른 위기의 초입에서 대대적인 양적완화와 신용 공급을 천명했다. 어떤 자산이든 최종 책임자가 되어줄테니 돈을 빼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발행시장 기업신용기구(Prim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PMCCF)와 유통시장 기업신용기구(Second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SMCCF)를 통해 7500억달러(약 900조원)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시장은 환호했다. 덕분에 최소한 증시는 V자 반등에 성공했다. 그런대 6월 들어 실제로 연준이 이 자금을 집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PMCCF는 아직 어떤 구조로, 어떤 기업의 회사채를 사줄 것인지조차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았다. SMCCF는 지금까지 고작 50억달러(약 6조원)를 집행했을 뿐이다.

      이런 우려가 11일 파월 연준 의장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발언을 계기로 터져나오며 흔들린 게 최근 급락세의 핵심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이 흔들리자 연준은 부랴부랴 새 대책을 내놨다. '브로드 마켓 인덱스'(Broad Market Index)라는 새 회사채 시장 지수를 만들어, 이 지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회사채를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지수에는 신용등급ㆍ만기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하는 유통시장의 모든 회사채가 반영되며, 4~5주에 한번씩 자격요건을 재검증해 비중을 조정한다. 실제 자금 투입은 SMCCF가 맡는다. 연준은 이와 함게 PMCCF도 '가까운 장래에 가동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준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주식을 매수할 수 없다. 회사채는 매수가 가능하지만, 매수 기준이 문제가 됐다. 연준 자금을 지원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두고 기업의 생과 사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연준은 스스로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이라는 제한을 뒀고, 제한으로 인해 효율적인 자금투입이 어려웠던 것이다. 브로드 마켓 인덱스는 이런 제한을 해소해줄 수 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혼조세였던 증시가 16일 연준의 새 발표 이후 다시 상방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이젠 코로나19가 문제가 아니라, 연준이 실제로, 얼마나 돈을 풀지가 더 큰 변수로 떠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여전히 코스피 지수는 장중 미국 주요 지수의 야간선물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 당분간 방향성을 모색하다가, 미국 연준과 국내 3차 추경의 유동성 공급 일정에 따라 움직일 거란 전망이 많다.

      다만 여전히 증시 과열의 신호는 여기저기서 보인다. 지난 18일 코스피 시장에선 SK증권 우선주 등 우선주 20개 종목이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한화투자증권 우선주 등 다른 중소형 증권사 우선주도 덩달아 상한가로 직행했다.

    • SK증권 우선주의 경우 'SK바이오팜 상장 수혜 기대감'이 상한가를 기록한 핵심 배경으로 꼽혔다. 다만 SK증권은 경영권이 사모펀드에 매각돼 상표만 SK를 쓰고 있는, 지배구조가 다른 회사다. SK바이오팜 공모에는 인수사로 참여해 인수대가로 5억원 가량을 받는 게 전부다. 유통주식 수가 적은 우선주에 유동성이 몰리며 생긴 웃지 못할 현실이란 평가다.

      씨티그룹에서 발표하는 시장 변동성 지수인 '공황/희열 모델'(Panic/Euphoria Model)은 5월 초부터 극도의 희열 단계로 접어들었다. 현재 최근 3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동학 개미와 비교되는 미국의 로빈후드 투자자(무료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를 쓰는 개인투자자들의 통칭)들이 워렌 버핏 등 투자 구루(guru)들을 공공연하게 비웃고 있는 점을 '꼭지 징후'라고 인식하는 전문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우선주 랠리는 통상적으로 종목별 순환매 장세의 끝자락으로 여겨진다"며 "이전같으면 과감히 하락에 베팅도 해볼텐데,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이 얼마나 더 풀릴지 예상할 수 없으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