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파산 가능성에 줄도산 우려하는 항공사들
입력 2020.06.23 07:00|수정 2020.06.23 09:01
    제주항공 요구한 임금체불, 이스타 해결 어려워
    이달말 지나면 M&A도 계약시효 만료
    줄도산 우려하는 항공사들, 투자자 동요도 예상
    •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이 임금 체불 문제를 놓고 의견 조율에 계속 실패하면서 딜(Deal) 무산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대주주의 자구 노력은 인수 전제조건이라 말하고 있고 이스타항공은 계약사항에 기반해 임금체불 해결 책임은 제주항공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잡음이 길어지는 와중 제주항공은 17일 "임금 체불은 기존 경영진과 최대주주가 책임져야 한다. 인수는 그 이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쐐기를 박았다. 이스타항공은 이달 말로 예정된 인수작업 종료시한을 앞두고 26일에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사실상 압박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평가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19일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앞에서 임금체불 문제 해결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스타항공은 임금 체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재무상황이 악화해 있다. 최대주주와 별개로 사측이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을 끌어모으는 중이지만 실상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임금, 리스비, 시스템 관리비, 통신료 등 매달 집행해야 하는 비용이 160억원 수준인데 이 고정비는 2월부터 사실상 모두 연체되고 있다. 제주항공 지원 없이 기사회생하려면 ▲정부 지원 ▲대주주 사재출연 ▲임금 삭감 등이 거론되지만 이마저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인수를 포기할 거라면 빨리 결정해서 정부지원이라도 독자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회사의 선제적인 자구안이 없으면 지원도 어렵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선 자구안 하나 없는 이스타항공에 지원해줄 명분이 부족하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 에어부산, 플라이강원 등 다른 LCC들처럼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 등을 쉽게 결정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 증권사 항공 담당 연구원은 "지금까지 이스타항공과 관련된 정부 지원금은 국책은행이 제주항공의 이스타 인수 지원자금 명목으로 추진한 1700억원 규모 신디케이트론이 전부지만 이것도 정부가 항공업계 구조조정을 돕는다는 명분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매각에 실패하면 지원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대주주가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 사재출연을 위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란 주장도 나온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대주주는 사실상 실소유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딸 이수지(31) 이스타홀딩스 대표 겸 이스타항공 상무와 아들 이원준(21)씨다. 이들은 이스타홀딩스 지분을 각각 33.3%, 66.7%씩 보유 중이다. 항공업계는 이들 오너 일가가 이스타항공을 살릴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재출연에 나서더라도 거론되는 규모로는 한 달 유동성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가 다수다.

      임금 삭감도 쉽지 않다. 체불임금 250억원 중 100억원은 최대주주가 해결하고 나머지 임금은 근로자가 포기하는 안이 제시됐지만 이미 반발에 부딪혔다.

      사실상 실현 가능한 카드가 거의 없다보니 이스타항공 내부에서도 동요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스타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내부에선 제주항공에 인수만 되면 밀린 임금도 받고 위기를 이겨낼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항공과 합병될 것을 염두에 둔 조직 와해도 있었지만 회사가 정상화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으로선 직원들도 별다른 묘수는 없다고 느끼고 더 이상 희망도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 3월 양사 간 체결된 주식매매계약(SPA)에 따르면 계약 시효는 이달 말에 만료된다. 이 시기까지 이스타가 끝내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결국 매각이 불발할 뿐 아니라 독자노선을 걷더라도 자본 확충안이 없으면 7월 내로 파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잇따라 제기된다. 투자업계는 이미 이스타항공 파산 이후를 염두에 두고 손익계산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스타항공의 파산이 곧 국내 항공사 줄도산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항공사들은 지난해부터 공급 과잉과 부족한 경쟁력 등으로 항공업계 재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특히 대다수 LCC들은 이스타항공과 비교해 재무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 데다 정부 지원에서도 벗어나 있어 자체적으로 자본확충안을 검토 중이다. 항공업계 전반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만큼 이들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은 더욱 냉정해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