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왜 KTB투자증권에 리포트 삭제를 요청했을까
입력 2020.06.23 07:00|수정 2020.06.24 09:42
    • 한화그룹이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에게 ㈜한화 리포트를 삭제해달라 요청하면서 화제가 됐다. 미국 수소트럭업체 니콜라 투자 대박 소식이 시장에 알려지며 한화그룹 주가가 급등을 보였던 시기다. ㈜한화 측이 문제 삼은 부분은 리포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이치솔루션은 특수관계인 주주 3인이 100% 소유한 회사이기 때문에 지분율이 적은 경우보다 합병 후 희석이 적고, 한화에너지, 한화종합화학, 한화시스템 등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재원이 많다"며 "지분구조 개편이 추진된다면 ㈜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이 합병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

      한화 측은 “리포트 내용에 언급된 에이치솔루션과 ㈜한화간 합병 내용이 있었는데, 전혀 팩트에 맞지 않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투자자에 피해가 갈 수 있다 설명해 리포트를 내리는 방안을 요청했고 해당 연구원도 회사 설명에 수긍해 리포트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합병을 가정한 가설이 잘못됐고, 관련된 내용도 다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곧장 한화의 조치를 두고 시장에선 논란이 일었다. 에이치솔루션과 ㈜한화 두 지주격 회사의 어색한 동거는 한화그룹 지배구조의 기본이자 한화그룹의 의사결정 뼈대를 살피는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다.

      다른 증권사 지주 담당 애널리스트는 “당시 리포트에 승계와 관련 강한 어조의 글이 적혀 있던 것도 전혀 아니고 니콜라 투자에 따른 에이치솔루션의 수혜 여부와 현재 3형제 지분이 어떤지 정도의 ‘사실관계’가 주로 나열됐던 리포트였다”라며 “이 정도 리포트에 그룹이 항의하다보니 한화그룹이 ‘에이치솔루션’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해당 이슈에 대해 리포트가 삭제되다보니 논리를 일부 ‘변주’한 리포트가 살아남았다.

      '승계를 위하여 김승연 회장 자제 3명이 동사((주)한화) 지분을 늘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력한 것은 동사와 에이치솔루션과의 합병이라고 판단됨. 합병에서의 최대 난관은 합병비율이 될 것임. 주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병비율을 산출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임. 지분을 늘리려는 입장에서는 에이치솔류션의 가치 상승이 중요하지만 합병 성사 관점에서는 주주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주가 수준이 더 중요함.

      해석해보면 “에이치솔루션의 기업가치가 커져야 합병 시 삼형제가 얻을 ㈜한화 지분이 늘어나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 ‘티’나게 가치를 상승시키면 합병비율을 두고 구설수가 날 테니 ㈜한화에도 수혜가 나눠지지 않겠냐” 정도의 절충 의견이 유통되는 셈이다.

      니콜라 투자 건을 대입해봐도 에이치솔루션의 수혜는 분명히 드러난다. 한화그룹은 지난 2018년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을 통해 니콜라에 각각 5000만달러씩 1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100억원)를 투자했다. 현재 이 지분의 가치는 1조8300억여원에 달한다. 10배 넘는 잭팟이다.

    • 두 투자 주체 중 한화에너지는 3형제가 모든 지분을 보유한 개인회사 에이치솔루션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즉 한화에너지 투자분에 대한 주가 상승분은 모두 에이치솔루션의 호재다. 나머지 한화종합화학의 경우 한화에너지(39.2%)와 한화솔루션(36.1%)로 지분이 분산됐다. 한화에너지 지분율 만큼의 몫은 에이치솔루션으로, 나머지 한화종합화학의 몫 중 극히 일부가 ㈜한화에 영향을 미친다.

      ㈜한화의 니콜라에 대한 간접지분율이 0.41%(36.9%×36.1%×3.07%)에 불과함에도 한때 주가가 50% 더 치솟은 현상도 나타났다. 경고음을 내야할지, 아니면 앞으로 이어질 수혜로 이어질지 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도 애널리스트의 역할 중 하나다. 한화의 조치로 투자자가 접근할 수 있는 논리구조는 "김동관 부사장 등 대주주가 눈치껏 ㈜한화 주주도 챙겨줄 것" 정도만 남았다.

      한화그룹의 주장대로 ㈜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의 합병이 전혀 '사실 무근'인 점을 받아들여도, 그간 그룹의 의사결정의 중심이 ‘에이치솔루션의 기업가치 극대화’에 있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핵심은 ㈜한화 산하 계열사들의 부를 에이치솔루션으로 이전하는 데 있지, 양 사가 합병을 할지, 에이치솔루션을 매각을 할지 등은 어디까지나 최종 수단일 뿐이다.

      이 논란은 비단 니콜라 이슈가 처음이 아니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큐셀’과 이름이 유사한 ‘한화큐셀코리아’를 계열사로 세워 알짜 수주를 몰아받았다. 이를통해 한화큐셀코리아의 영업이익은 2015년 7억원 수준에서 바로 직후인 2016년 1000억원으로 수직 상승했고, 에이치솔루션의 기업가치를 늘리는데 톡톡한 기여를 했다.

      이 때만 해도 애널리스트들은 "추후 한화케미칼 태양광 부문의 수익성 둔화→큐셀코리아로의 이익 전이가 나타날 위험(risk)를 내포하고 있다" 직접적인 경고음을 낼 수 있었다. 해외 리포트에선 대놓고 ‘경각심이 높아졌다(the alarm bells were raised)’란 표현까지 쓰며 한화 커버리지를 포기했다.

      당시보다 한화그룹은 더 예민해졌지만 여론이 희망대로 따라오진 않는 분위기다. 여의도엔 한화그룹에 승계가 더 급박해 진 이슈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파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