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 Column]
은행도 네이버ㆍ카카오에 목숨줄을 쥐어줄텐가
이재영 기업금융부 차장 | leejy@chosun.com | 2020.06.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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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회사들이 네이버ㆍ카카오 금융부문의 약진을 지켜보며 느끼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뉴스의 배급창구 중 하나에 불과했던 포털이 이제는 언론사보다 더 막강한 언론권력을 손에 쥐고 언론사를 줄 세우는 걸 지켜봤다. 이제 다음 차례는 은행, 보험사, 카드사 등 금융회사가 될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근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그룹 전사적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는 '디지로그 위원회'를 신설해 직접 위원장을 맡은 것이나,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지난해 직원들과의 타운홀미팅에서 KB의 경쟁자를 묻는 질문에 '디지털ㆍIT(정보기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한 것은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국민 인터넷 시대가 열린 지는 20년,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 시대가 열린지는 10년이나 지났다. 이미 그 전에도 금융업계에서는 디지털ㆍIT를 외쳤지만, 대부분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은행 전산망 시스템을 두고 고객의 이용 편의에 대한 논의는커녕 메인프레임이 안정적이네, 유닉스가 합리적이네 하며 밥그릇 싸움을 벌였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 바닥에는 금융은 규제산업이라 신규 경쟁업체가 쉽사리 들어올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단단한 규제의 벽을 뚫고 들어가려면 고객 기반, 인지도에 자본력까지 갖춰야 한다. 들어온 뒤에도 과점체제를 형성한 기존 거대 금융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일부 대형금융지주와 삼성 등 대기업만이 금융업에서 살아남은 이유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신산업을 육성한다며 기존 금융권 표현으로는 '반칙에 가까운 특혜'를 대형 테크핀(Tech-Fin;금융업으로 확장하는 정보기술기반 기업)에 주고 있다.

올해 8월에 시작하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대표적이다. 마이데이터는 고객들의 신용ㆍ거래정보를 한 데 묶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사업에 참여를 신청한 120여곳의 기업이 모두 자신이 가진 정보를 다른 참여 기업들에 개방해야 한다.

문제는 업종별 차등 규제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거의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네이버의 경우 금융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만 정보를 공개하면 된다. 네이버파이낸셜의 경우 간편결제가 주력 사업인데, 이마저도 카드사와 연계한 후불결제 비중이 높아 기존 금융사들에겐 큰 쓸모가 없는 정보일 거란 평가가 많다.

당초 금융사들이 마이데이터 사업에 테크핀의 참여를 환영했던 건 네이버 등 IT사업자가 보유한 검색ㆍ쇼핑 기록을 기반으로 정교한 맞춤형 서비스의 틀을 짤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현 규정상 검색ㆍ쇼핑 기록은 공유 대상 정보가 아니다. 다만 네이버의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이 정보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기존 대형 금융사들의 고객ㆍ금융거래 정보에 모회사의 검색ㆍ쇼핑 기록 등 빅데이터를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자가 됐다. 금융회사들이 '정부 주도 마이데이터 사업의 유일한 수혜자는 네이버'라고 볼멘 소리를 내는 이유다.

간편결제 시장에서도 기존 금융사 최후의 보루였던 후불결제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내달 중 네이버파이낸셜의 후불 간편결제를 혁신사업을 지정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와서다. 신용 기능이 없는 간편결제 사업자에게 사실상 신용카드사와 비슷한 지위가 부여되는 것이다. 만약 현실화한다면, 간편결제 시장에서 카드사에게 남는 우위는 할부 서비스 정도가 된다.

연간 1000조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비현금 결제 시장에서, 간편결제는 200조원 수준인 체크카드 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됐다. 후불 간편결제가 허용되면 800조원 규모의 신용카드 시장도 네이버파이낸셜의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

다급해진 금융사들은 여러 통로를 통해 위급함을 호소하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의 경우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형평성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며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언급했다. 오는 29일 금융위가 개최하는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포럼'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업이 언론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에 나서야 한다. 포털과 언론의 권력 관계가 아직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았던 2005년 전후엔 언론도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여러 움직임을 보였다. 포털에 기사 공급을 끊는다던가, 특정 포탈에만 일방적으로 기사를 제공한다던가, 송고한 지 일주일이 넘은 기사는 포털에서 검색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여러 시도가 있었다.

언론사와 포털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지난 2008년엔 주요 일간지 등 20여개 언론사가 '뉴스뱅크'라는 자체 뉴스 포털 서비스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도사진 온라인 활용시 무상 제공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서비스였다.

그러나 결국 이는 모두 흐지부지됐다. 포털에 대한 요구는 대부분 언론사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흐지부지됐고, 뉴스뱅크는 독자보다는 공급자 편의 위주의 사이트로 흘렀다. 포털도 2강 체제로 정리되며 이용자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 포털과의 힘겨루기를 끝내지 못한 언론사들은 결국 포털에 우위를 내주고 말았다.

이런 반례에 비춰보면 금융권이 지금 해야할 일은 어렵지 않다. 2018년 한국은행의 지급수단 선택기준 상대평가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압도적으로 '편리성'을 제 1척도로 꼽았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 그리고 토스가 파고든 것도 이 틈바구니다.

금융상품 공급 체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보험 판매 시장에서 독립대리점(GA)이 득세할 수 있었던 건 서로 다른 공급자의 상품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소비자들의 수요에서 비롯됐다. 독자들이 기사를 포털에서 읽기 시작한 것도 정확히 같은 이유다. 지금처럼 폐쇄적인 상품 공급 구조로는 합리성을 내세운 테크핀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울 수 있다. 전향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정부는 그간 수 차례 금융업의 경쟁 강도를 높이겠다, '메기'를 풀겠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여론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생존하려면, 어설픈 구호보다는 파격적이다 싶을 정도의 행동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28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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