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 도산까지 걱정해야 하는 수출 기업들
위상호 기자 | wish@chosun.com | 2020.07.01 07:00
Edited by 이도현 차장 | dohyu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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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 연쇄 도산에 수출대금 회수 불투명
신고된 채권만 회수 기대…로펌 자문 수요 늘어
신고 채권도 회수율 불투명…中企 이중고 우려

미국 기업들의 도산이 늘면서 국내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수출이 줄어드는데 물품 대금까지 받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기업들의 법률자문 수요 역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대응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미국의 도산절차에서도 구제받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 미국 내 경기지표가 반등하며 하반기 V자형 회복을 기대하는 의견도 조금씩 고개를 든다. 그러나 이는 미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의 영향이 크다. 5월 유통업 판매가 전달 대비 크게 늘었지만 작년보단 적다. 코로나 2차 확산이나 미중 분쟁 우려도 여전해 실물 경기 회복을 점치기 어렵다.

미국 기업의 파산은 줄을 잇고 있다. 중저가 백화점 JC페니, 의류 소매업체 제이크루, 가정용품 유통사 튜즈데이 모닝, 피트니스 체인 골드짐, 에너지 기업 등 숱한 회사들이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 렌터카업체 허츠와 고급 백화점 니만마커스 등 100년 기업까지 쓰러졌다.

미국 기업의 파산보호 신청이 늘며 법무법인들의 문을 두드리는 국내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미국 파산보호는 우리 회생절차(법정관리)와 유사하다. 기업을 청산하기보다 존속시켜 얻는 효용이 클 때 활용된다. 기업은 사업을 유지하며 부채를 줄이고 노동 관계도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다. 절차가 시작되면 채권자는 채무자(기업)에 청구 소송 등 채무 이행을 촉구할 수 없다. 외국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채권자는 기업이 능력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절차 안에서 채권을 인정받아야 늦게라도 상환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이 파산보호 신청 사실을 알려오면 국내 기업들은 정해진 기한 안에 채권 신고를 해야 한다.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 기업 중심으로 신고 업무를 맡기기 위해 법무법인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의가 늘며 도산은 물론 일반 송무나, 자문 변호사까지 이런 업무에 관여하는 분위기다.

한 대형 법무법인 자문 변호사는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도 신고되지 않은 회생채권은 보호받지 못한다”며 “도산하는 미국 기업이 많아지며 이 기업들 채권을 가진 국내 수출기업들로부터 채권신고 업무를 의뢰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이 인정받는다 해도 회수율은 천차만별이다. 상황에 따라 채권을 거의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미국파산연구소(ABI) 등에 따르면 5월 파산보호 신청 기업은 722곳으로 작년 대비 48% 늘었다. 코로나 구제 프로그램이 끝나면 증가세가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파산보호 중이라도 기업이 다시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수출 기업의 물품 대금은 대부분 무담보채권인데, 무담보채권은 대출 금융사나 유치권자 등 담보채권자에 비해 변제 순위가 밀린다.

국내 기업들은 가뜩이나 수요처의 체력 악화로 고심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출은 2018년 11월 이후 올해 2월을 빼고 모두 감소세다. 4월과 5월 수출은 작년 동기보다 각각 25.1%, 23.7% 줄었다. 부산의 경우 지난달 대미 승용차 수출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기도 했다.

여기에 기존의 물품 대금 등 채권이 언제 회수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덮친 형국이다. 미국 기업 파산신청과 채권 회수 지연, 국내 기업 파산과 수출 감소 등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형 법무법인에 채권 신고 업무를 맡길 정도면 그나마 사정이 낫다. 중소 수출기업들은 법무법인의 조력을 받기 쉽지 않아 더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내 법무법인이 미국 기업의 파산 관련 업무를 맡을 수 있지만 대부분 미국 로펌의 손도 빌려야 한다. 국내 법무법인의 역할은 ‘중개자’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미국 로펌은 수임료가 비싸다. 대기업이야 채권 규모에 따라 국내외 자문을 모두 받겠지만, 그보다 작은 기업은 국내 법인만 고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법무법인 입장에서도 이 정도 일에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기 부담스럽고, 중소기업 일을 맡자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다른 대형 법무법인 구조조정 담당 변호사는 “미국 기업 파산과 관련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채권신고 업무를 맡아달라고 의뢰해오는 사례가 많은데 중개자 역할만 해서는 수익성이 좋지 않다”며 “앞으로도 작은 수출기업들은 자문료 부담과 채권 회수 불확실성의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25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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