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매각주관사?…나쁜 선례가 될 이스타항공 M&A
입력 2020.07.03 07:00|수정 2020.07.07 10:15
    • 이스타항공 매각 논란이 조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창업주이자 대주주는 여당 국회의원이다. 딜(Deal)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체불임금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의원’ 대주주는 보유주식을 전부 회사에 헌납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주주가 직접 책임지라고 노조가 외치자 여당 부대변인이 노조와 직접 접촉해 중재했다. 인수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제주항공은 정치권의 인수 종용 압박을 받는 모양새가 됐다.

      일반적인 M&A 과정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시장은 이스타항공 매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큰따옴표 안의 말은 이를 지켜보고 있는 시장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괴상한 딜이다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보유 주식 헌납으로 이스타항공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제주항공에 조속히 인수를 마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의원 주장에 따르면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39.6%의 지분가치는 매각가액 기준 약 41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일반적인 M&A에선 이번 주식 헌납이 딜에 미칠 영향은 ‘제로’라고 평가한다.

      "지분가치를 M&A 거래대금 기준으로 적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쳐도 이 의원 측의 보유 지분가치가 410억원이라는데 그나마도 세금 등 제반비용을 빼면 200억원 중반대라 250억원 상당의 체불임금을 빼면 사내유보금으로 쌓이는 게 없다”

      “이스타항공의 명목상 가치가 매각가액인 545억원인데 이게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이 회사의 실질 가치라 할 수 있나"

      결국 체불임금 문제는 제주항공이 인수해야만 풀릴 문제라는 것을 매각 측에서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

      "지분 헌납이 지금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매각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라 마치 다 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체불임금은 제주항공의 인수가 실현돼야만 매각차익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회사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근로자대표는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대주주의 결단을 환영했다. 하지만 조종사 노조는 이 의원 일가가 발을 빼려는 꼼수라며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주항공 역시 “이 의원 측의 주식 헌납은 사전에 상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으로, 타이이스타젯 지급보증 등 선행조건은 아직 더 남았다”는 입장이다.

      제주항공 입장에선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필요가 있을지 고민이다. 코로나 이후 LCC 업계 자체는 최악의 상황이다. 실사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의 실제 상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제주항공도 유상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스타항공 인수시 재무건전성이 얼마나 악화할지 알 수 없다. 정부 지원은 이스타항공 인수시에만 받을 수 있다.

      일반적인 딜이었다면 제주항공이 그냥 포기하면 된다. 매매대금의 일부로 납부한 115억원의 계약금은 차후에 있을 수 있는 위기를 대신한, ‘수업료’로 치면 된다. 문제는 말처럼 쉬운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시작부터가 회사 주인이 여당 국회의원인 회사의 매각 건이다. 흔한 일이 아니다. 이상직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내 경선부터 문재인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고, 선대위에선 직능본부 수석본부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 의원은 제주항공에 M&A 이행을 촉구했다. 임기가 이제 시작한 여당 국회의원의 촉구를 민간 기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딜 과정에서 정치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이 직접 이스타항공 노조에 접촉해 중재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항공은 당초 보잉737맥스 기종 50대를 구매할 계획이었지만 추락사고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전략을 수정해야 하던 찰나 국토교통부가 먼저 접촉해왔던 것으로 안다. 정부에는 항공업계 재편이란 명분이 있었고, 마침 보잉 기종이 일치하는 이스타항공 인수 검토를 종용했을 것이다. 시작부터 정부가 건드린 딜이었고 결국 꼬였다"

      국토교통부가 진에어에 20개월간 제재를 가할 만큼 항공업은 규제를 많이 받는 산업이다. 항공사들은 국토교통부를 포함해 정부와 정치권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제주항공이 섣불리 딜을 깨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강압적으로 연출되고 있다는 점이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스타항공 매각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지지부진하던 찰나 국내 최초 항공사 M&A가 될 수 있는 상징성을 띤 딜이었다. 업계 공급과잉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시장 관계자들은 정치권 개입으로 M&A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나쁜 선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양사가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하는데 정치권이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M&A 과정 같지 않다"

      "마치 여당이 이스타항공 매각 주관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왜 정치권이 민간기업 M&A 과정에 개입하나. 이런 상황에서 딜이 성사돼도 누가 제주항공이 자발적으로 이스타항공을 사갔다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진척 없이 공방만 오가면서 계속되는 인수 잡음, 정치권의 개입으로 이도저도 못하는 인수 측, 이를 지켜만 봐야 하는 제주항공 주주들과 양측의 임직원들. 대주주를 제외하곤 모두가 피해를 보는 딜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