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실물경제…커지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부실 우려
입력 2020.08.05 07:00|수정 2020.08.06 10:45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게임 업체 몇몇만 생존
    IT업체들 상당수 무자본의 프로젝트성 모임
    제조업체들은 이미 떠났고 남은 수출업체들도 휘청
    하반기 주요 변곡점 될 듯
    • “2~3년 전부터 기업들이 속속 이곳을 빠져나가고 있고, 이제 남은건 몇몇 IT 기업들 밖에 없어요. 지금 남아있는 업체들이 그나마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업체들 입니다.”(가산디지털 단지 내 A 부동산 직원)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산디지털단지역 에스컬레이터에 길게 줄을 서야 했지만, 올해 들어서 그 줄이 없어졌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나이가 젊은 비정규직이 많은데 경기둔화에 가장 취약한 층이고 고용보장이 확실치 않은 영향으로 보입니다.”(가산디지털 단지 내 B 은행 지점장)

      정부, 정치권을 비롯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부동산으로 쏠려 있지만 상대적으로 산업의 핏줄인 산업단지의 '빈방'이 늘어나는 추세다. 오르는 집값과는 대조적으로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메카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가산 디지털 단지) 내의 사무실의 공실이 증가 추세다. 몇 년 전부터 곡소리가 났지만 근근이 버티던 중소기업들마저 코로나란 카운터 펀치에 녹다운 직전 상황까지 내몰렸다. 1960년대부터 한국수출을 책임진 국가산업단지로서의 생명이 다했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다.

      금천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G밸리’로 지칭하며 고용인원 약16만명에 달하는 대표적 일자리 창출의 중심지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가산디지털단지역은 서울 지하철역에서 출근 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으로 자리매김 한 곳이다. 그만큼 중소-벤처기업이 밀집해 출퇴근 직장인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7월28일 방문한 가산디지털단지 역은 한산했다. 거리에도 사무실이 즐비한 오피스 공간에도 북적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부동산의 분위기는 적막했다. 입주를 위해 사무실을 찾는 손님의 발길도 없는데다, 작년까지 이어지던 사무실을 내놓는 손님의 발길도 줄어들었다.

      A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제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빠져나갔고, 지금은 IT업체 일부만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작년에 대통령상을 받은 업체마저도 사무실을 정리할 정도로 이곳의 사정이 열악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이 위치한 건물에는 보안솔루션, 바이오 업체 몇 곳만이 입주해 있었다.

    • 해당 기업들의 분위기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B은행도 상황은 비슷했다. 은행 창구는 한산했고, 해당 지점장이 전해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총 세 개의 단지로 구성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중 가장 최근에 들어선 3단지는 사실상 공동화 상태였다. 가장 먼저 형성된 1단지에는 상대적으로 건실한 기업이 들어와 버티고 있지만 패션 업체, IT, 제조, 출판사들이 위치한 3단지는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3단지는 가산디지털단지역 바로 옆에 위치한데다 새로지은 아파트형공장, 지식산업센터가 즐비해 있다. 겉보기에는 가장 화려한 곳이지만 지점장이 전해주는 현지 사정은 ‘속빈 강정’이란 말이 어울렸다.

      B 은행 지점장은 대화가 시작되자 테이블에 올려진 가산디지털단지 지도에 적힌 기업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양지사, 교학사, 한국후지필름, LG전자 등 지도에 적힌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금 3단지를 떠난 상태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한때는 언론사, 출판사, 자동차 부품사들이 위치해 있었지만 이제는 역과 바로 연결된 사무실조차도 공실이 나고 있다.

      이 지점장은 “현재는 의류 및 IT업체 정도가 남아있다”라며 “IT업체라고 해봐야 프로젝트 성으로 공간만 활용하고 모였다가 해당 건이 끝나면 다시 해체되는 식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겉은 벤처이지 실상은 아무런 자산도 없는 회사들이 3단지를 채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지금 버티고 있는 업체들조차도 올해 하반기까지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점이다.

      현지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 은행과 거래하는 한 수출 의류업체를 예로 들었다.

      가산디지털산업 단지 내 위치한 C 의류 수출 업체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았다. 상반기에는 그나마도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고용 보조금으로 3개월을 버텼지만 해당 고용 보조금은 3개월까지 지금되는 한시적 지원이라 이것도 7월이면 끝난다는 것이다. 일감이 없다보니 이 업체는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출근은 시키지 않고 있다. 가산디지털단지 업체 직원 상당수가 비정규직 근로자이지만 그래도 이 업체는 정규직 직원을 채용해 이정도 대우라도 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지점장은 “은행 지점의 외환자금 월 취급액이 4000만불에서 코로나 이후 2000만불로 반토막이 났다”라며 “평균적으로 반토막이 난게 아니라 게임 등 일부 업체들의 사정은 좋으나 그렇지 못한 업체들의 매출이 크게 줄어서 양극단으로 실적이 갈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우리 점포도 상환을 연기해준 대출이 있는데 이도 10월이면 만기가 돌아온다”라며 “현재로선 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혹시 해당 지점만의 문제가 아닐까 해서 다름 은행에 문의했다. 다른 은행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은행에선 비단 3단지뿐만 아니라 마리오아울렛 등 패션업체가 위치한 2단지의 상황도 매우 안 좋다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마리오아울렛을 비롯한 쇼핑몰의 상황이 안 좋다”라며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이들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은행에선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부실이 하반기 은행으로 전이될까 우려하고 있다. 상반기 버티던 업체들마저도 하반기까지 버틸 체력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의 메카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어려움이 하반기에 가중된다면 비단 이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산업 생태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은행들도 대출금 회수를 연기해 주고 있지만, 마냥 이 기업들이 정상화되길 기다리긴 힘들다”라고 말했다.

      금천구청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으로 G밸리(구로-가산디지털단지) 내 1만1880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해당 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만 14만5616명에 이른다. 정보통신업에 종사하는 인원이 제일 많고 전기전자, 섬유 등에 종사자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미 제조업체들이 자리를 떠난 상황에서 남은 IT업체마저 부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은행들은 이곳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