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의의 부작용?...정부 추진 소비자신용법, 대출길 더 막는다
입력 2020.08.11 07:00|수정 2020.08.10 16:24
    소비자신용법 소식에 금융권 당혹
    특히 저축은행…"건전성 어쩌나"
    저신용자 대출 회피할 가능성도
    • 정부가 소비자신용법 입법 논의에 나섰다. 금융회사의 대출 회수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 주요 골자다. 생활자금과 주식청약 및 부동산자금 마련 수요 증가로 전 금융권 가계대출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향후 부실률이 관건으로 떠오른 가운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국의 건전성 규제로 추심이나 대부업체에 부실채권(NPL)을 매각해 온 금융사들은 연체율 상승 뿐만 아니라 대출자산의 가치 하락까지도 우려한다. 이에 따라 저신용자를 위한 대출상품이 줄어들어 이들을 대출의 사각지대로 더욱 내몰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상반기 전금융권의 가계대출은 크게 늘었다. 6월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29조원 정도로 전월대비 8조원 가량 증가했다. 이는 2004년 이후 6월 기준으론 최대치다. 그 중 신용대출도 6월까지 두 달 연속 3조원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전월보다 4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에서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채무자 부담을 더는 방식의 소비자신용법 법안 발의를 논의하고 있다. 이 법은 ▲상각 개인채권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장래 이자를 사전에 면제한 경우에만 매각할 수 있도록 하고 ▲채권 추심 연락횟수를 1주일에 7회로 제한하며 ▲채무자가 특정한 시간 및 방법을 통한 추심연락 제한을 요청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빚 독촉이 더욱 어려워지는 셈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회수 부담이 커진다.

      지난해 10월 손병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 부위원장은 제정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개인연체채권에 대한 금융회사의 관리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채권자의 유인구조를 채무자 친화적으로 개편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아직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재무상 여유가 있는 일부 금융사들은 대출이 3개월 이상 연체된 NPL을 회사 계정으로 가지고 있다가 추심해 회수해왔다. 그러나 당국이 전 금융사에 건전성 관리를 주문하면서 일부 금융사는 NPL을 추심이나 대부업체에 매각해 관리하기도 했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통상 NPL은 50~80% 충당금을 쌓아야해서 자산가치가 20~30%에 불과하다"며 "추심해 회수하면 80% 정도 이익인 셈인데 추심조차 어려워지면 이익은 커녕 연체율이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올해 1분기 국내 79개 저축은행의 총여신 연체율은 4%로 작년 말보다 0.3%포인트 늘어난 바 있다. 세부적으로 기업대출과 가계대출 각각 작년 말 대비 0.4%포인트, 0.2%포인트 늘었다. 최근 업계에서는 연체율 상승 우려로 대출을 늘리기 힘들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향후 신용대출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매각 규정이 생기면 매각이 어려워지게 되고 추심도 예전처럼 할 수 없으므로 매각할 때 가치가 낮게 매겨지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이 향후 대출받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사들이 부실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심사에 시간을 더 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저신용자 위주로 신용대출을 해오던 저축은행들은 대상기준으로 삼는 신용등급을 다소 상향조정해 부실위험을 회피하려고 할 수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지금 저축은행들이 7~8등급 후반까지 신용대출을 해주는데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조심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에게 대출해줬다가 나중에 상환이 안 되면 건전성이 크게 저하될 수 있기 때문에 대출을 안 해주려는 모습도 나타날 듯 하다"고 말했다.

      표심에 기댄 입법이 오히려 금융소비자 보호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다. 장기적으로, 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저신용자로 하여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모는 부작용이 나타날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한 NPL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신용불량자들을 모니터링하다보면 소득이 많지 않은데도 대출을 크게 끌어다 쓰는 사람들이 태반이다"며 "채무를 갚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자금을 필요로 하는 저신용자의 대출 통로를 막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