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도, LAT도, 순익도 '믿을만한 게 없다'...불신 커져가는 보험사 가치
입력 2020.08.12 07:00|수정 2020.08.11 16:18
    보험사들 기업가치 평가 기준인 EV 발표 안하는 추세
    EV에 대한 시장 신뢰도 낮고 정확성 떨어져
    감독당국의 LAT도 기준 완화하면서 현실 반영 못해
    IFRS17 도입 전까지 투자자들 제대로 된 정보 받기 어려울 듯
    • #한화생명은 올해 3월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통상 해오던 내재가치(Embedded Value;이하 EV)를 발표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2019년 연간 경영실적 및 EV 발표라고 되어있지만, 내용을 보면 EV가 빠졌다. 이 때문에 일부 투자자들이 EV에 대해  따로 문의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투자증권은 2019년 12월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 리포트를 내며 LAT 무용론을 제기했다. LAT는 보험사들의 부채 수준에 따라 적정 준비금을 쌓도록 하기 위해 금융당국에서 만든 제도다. 하지만 감독당국에서 금리 시나리오를 몇 차례 완화하는 방향으로 변경하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현행 LAT제도에 대해 누더기가 된 LAT라 평가했다.

      상반기 실적발표 시즌이 다가오지만 보험사 실적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커져만 가고 있다. 보험사가 제공한 수치중에 믿을만한 수치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어떤 자료를 보고 보험사에 투자해야 하는지 반문한다. 이런 불신은 주가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우선 최근 보험업계에선 2000년대 중반부터 기업가치 평가자료로 활용한 'EV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EV는 보험사가 보험계약자와 맺은 계약을 기반으로 앞으로의 금리 변화 등을 감안해 미래에 가능한 기대이익의 현재가치를 말한다. 보험사들이 그간 발표한 EV는 보험사마다 가정한 금리 수준을 반영해 미래에 가능한 기대이익을 산출하는데, 지금처럼 금리 변화가 급격한 상황에선 각 사마다 기준이 달라 제대로된 평가가 어렵다.

      한 증권사 보험연구원은 “보험사들마다 적용하는 금리 예측이 달라 그간 제공해 온 EV가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부 상장사를 중심으로 EV를 공개했지만, 최근에는 하나둘씩 EV 발표를 안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이미 보험산업이 발전한 유럽에서도 제기가 됐었다. 이에 따라 유럽의 보험사를 중심으로 통일된 금리수준(무위험 수익율)을 적용해 내재가치를 산출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회사 내부적으로만 해당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업계에선 외부에 발표하는 EV와 내부에서 보고하는 자료가 따로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회계법인 계리 담당자는 “M&A 등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 회사가 발표하는 EV로 기업가치를 평가하지 않는다”라며 “새로운 회계제도인 IFRS17에 적용되는 방식을 활용해 기업가치를 산출해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비단 EV만의 문제는 아니다. 회사가 발표하는 순이익에도 왜곡이 심하다는 비판이다. 보험영업수익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보험사들은 꾸준히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가격이 높아진 채권을 시장에 매도하면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보험에서 나는 손해를 메우기 때문이다.

      이 회계법인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수치 중에서 신뢰하고 볼만한 수치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신뢰할 만한 지표로 여겨졌던 LAT 제도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LAT 제도는 2023년에 도입될 IFRS17을 대비하기 위해 금융당국에서 각 사의 부채적정성을 평가해 이를 기반으로 책임준비금을 쌓도록 한 제도다. 당초에는 현재의 금리 수준에 맞춰서 단계적으로 보험사의 부채가 적정한지를 평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자 보험사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적용하는 금리 수준이 완화했다. 현재의 금리수준으로 평가하면 책임준비금을 쌓아야할 보험사들이 하나둘씩 나와야 정상이지만 완화된 제도하에선 실제 책임준비금을 쌓을 보험사가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러다 보니 보험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높아져만 간다. 계리 전문가들 조차도 회사내에서 정보를 받지 않고선 사실가 처한 상황을 인지하기 힘들다. 특히나 장기투자를 원하는 투자자 입장에선 회사가 영속 가능한지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초저금리로 보험사의 상황이 안 좋은데 굳이 무리하면서 새로운 시스템까지 만들어야 하는 IFRS17을 도입해야 하냐는 주장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지속적으로 IFRS17을 반대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IFRS17이 되어야 보험사에 대한 제대로된 기업가치 평가를 받아 볼 수 있다”라며 “지금의 보험사 주가가 낮은 이유도 보험사에 대한 불신이 커 투자자들이 보험사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는 탓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