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들, 대기업CVC 수임두고 치열한 경쟁 예고
입력 2020.08.25 07:00|수정 2020.08.26 10:00
    대기업 CVC 허용에 자문업계도 분주
    저렴한 수임료로 존재감 드러내는 부티크 로펌
    공정거래 이슈 등 원스톱 서비스는 한계란 평가도
    • 대기업 일반지주사의 벤처캐피탈(CVC) 보유 허용 이후 로펌업계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기업들의 법률자문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을 거란 기대감에 각 로펌들도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대형로펌들은 대기업 CVC 전담조직을 만들어 원스톱 서비스를 내걸었고, 스타트업을 전문으로 하는 부티크 로펌들은 비교적 저렴한 수임료로 실속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최근 로펌들 사이 최대 화제 중 하나는 '벤처캐피탈'이다. "요즘은 어느 미팅을 가든 전부 벤처캐피탈 얘기만 한다"는 얘기도 자주 나온다. 그간 벤처캐피탈(VC)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스타트업 투자를 이젠 대기업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뛰어든데다 일반지주사 CVC 보유 제한도 풀리면서 특히 지주사의 자문수요가 최근들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CVC는 대개 그룹 내에 법무팀을 갖췄지만 CVC 개정안 제한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사소한 것이라도 법무법인을 통할 수밖에 없을 거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문시장도 더욱 규모를 키워 수혜로 돌아올 거란 기대감이 엿보인다.

      법무법인 세종의 행보가 눈에 띈다. 세종은 대기업 CVC팀을 공식적으로 꾸린 것은 아니지만 파트너 변호사 6인을 주축으로 자문업무를 전담할 조직을 꾸린 것으로 파악된다. 대개 고객 기반이 대기업에 맞춰져 있는 인수·합병(M&A) 자문 담당 인력들로 구성돼 있다. VC가 M&A와 비교해 자본 성격은 조금 특수하더라도 거래 구조는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세종을 비롯해 태평양, 광장 등 대형로펌들은 각각 스타트업 지원 전담팀을 꾸리거나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에 분사무소를 내 상주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당장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고객은 아니지만 향후 성장에 따라 더 큰 수익 창출 기회가 열릴 것이란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관계를 맺은 스타트업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 추후 IPO나 M&A 등 대형 일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초기 투자 사이드를 노리는 스타트업 전문 독립(부티크) 로펌들도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모양새다. 큰 규모 딜은 대형로펌이 가져가더라도 초기 투자 자문 수혜는 노려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스타트업 전문 로펌으로는 업계 내 규모가 가장 큰 세움을 비롯해 마스트, 비트, 디라이트, 최앤리 법무법인 등이 있다. ICT 전문 로펌을 표방하며 공대 출신으로만 변호사를 구성한 곳이 있는가 하면 업계 최저 수임료를 내세우며 홈페이지에 비용을 공개하는 곳도 있다.

      이들 로펌은 공통적으로 '대형로펌보다는 스타트업 업계 생리를 우리가 더 잘 안다'는 점을 어필한다. 한 부티크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시리즈D 이후로는 대형로펌이 주로 맡겠지만 시리즈A·B·C 같은 초기 투자 자문은 우리 같은 스타트업 전문 로펌에 더 강점이 있다고 본다. 스타트업·벤처기업 관련 딜을 주로 맡아왔기에 이쪽 업계 생리를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통상 대규모로 투자를 하다 보니 스타트업에 원하는 게 많고, 스타트업은 '왜 우리가 투자자에게 이런 것까지 해줘야 하느냐'는 인식 차가 있다. 스타트업 생리를 잘 알고 있다보니 중간에서 이 괴리를 해소하는 역할을 자처하겠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들의 높은 시간당 비용과 분배문제를 고려해 저렴한 수임료도 강점이 되고 있다. 또 다른 부티크 로펌 관계자는 "투자가 절실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최대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원하기에 속도가 빠르게 진행돼야 하는데 대형 쪽은 절차가 다소 복잡한 면이 있고 이 때문에 비용도 크게 차이가 난다. 비교적 부담이 덜한 수임료와 빠른 실행력이 우리 로펌의 강점"이라는 설명이다.

      대형로펌도 이들에 대한 기업수요를 인정하면서도 은근히 견제하는 모습이다.

      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스타트업 투자시장이라는 니치 마켓을 초기에 잘 잡은 세움과 비트, 디라이트에 초기 투자 자문을 맡기려는 대기업 CVC들의 수요도 있는 것으로 안다. 스타트업 수요를 잘 알뿐더러 자문료도 비교적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들 로펌이 최근 들어 거래 건수를 늘리며 리그테이블에 새로 순위를 올리고 있지만 거래 규모는 대체로 작다. 통상 대규모로 투자금을 유치하는 대기업 입장에서 아무래도 건수보다는 규모를 기준으로 자문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거래의 본질적인 내용이나 이슈는 결국 같다는 점에서 대기업 벤처투자를 초기와 중후기로 굳이 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부티크 로펌이 강조할 '실속' 대신 거래 이후 파생될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관리해 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대형로펌 한 변호사는 "국내 대기업은 특히 외국에 비해 노동친화적인 부분에서 기준이 꽤 엄격한 부분이 있다 보니 잡음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HR(인적자원)이나 인수 후 통합(PMI) 문제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대기업 특성상 사업 확장에 따른 공정거래 이슈에 있어서도 그간 신뢰가 쌓인 대형로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부티크 로펌에는 '대기업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대형로펌에는 '경쟁사들뿐 아니라 치고 올라오는 신생 로펌 견제'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로펌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전문 로펌은 아무리 업계 전망이 밝다 하더라도 대기업 입장에선 그간 네트워크를 쌓아왔던 대형로펌과 비교해 신뢰도가 비교적 떨어진다. 대기업과 함께 일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학연이나 지연으로 맺어진 경우가 많다. 대형로펌도 이들 로펌이 지금은 초기 투자만을 노리지만 언제가 치고 올라올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