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와 따로 노는 삼성전자ㆍ하이닉스
입력 2020.08.27 07:00|수정 2020.08.28 16:06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최고치 경신할 동안
    하반기 들어 신통찮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비메모리' 위주 재편
    '메모리' 시황부진 지속…반등 시점도 불확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글로벌 핵심 반도체 지수인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와 동떨어진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사상 최고점에 달했지만, 글로벌 자금은 국내 반도체주에 밀려들지 않고 있다. 하반기 들어 이 같은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이 심화하자 피로감을 호소하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전세계적인 강제적 디지털 전환 국면에서 메모리반도체가 일시적으로 소외됐다는 분석이다. 데이터센터 등 반도체 시장 내 큰 손들의 증설계획이 아직 깜깜이 국면인 가운데 메모리반도체인 디램(DRAM) 가격하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으로 인한 수급 측면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24일 기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96% 상승한 2219.37포인트로 마감했다. 지난 21일 역사적 고점(2240.99포인트)을 갱신한 뒤 큰 폭의 변동 없이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 이전 고점을 돌파한 것은 물론, 지난 폭락장 당시 저점(1233.97%)의 2배 수준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여전히 코로나 이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상위 10개 업종 중 유일하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20일, 팬데믹이 발발했던 3월 수준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는 건 현재 글로벌 시장이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업체인 엔비디아는 지난 2분기 사상 최대 실적과 함께 데이터센터 시장 선점을 위한 청사진을 내놨다.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GPU 시장이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 4차산업 핵심 영역에서 고속연산 기기로 재조명된 데 따른 행보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향 매출액은 2분기를 기점으로 기존 주력시장인 게이밍 부문을 뛰어넘었다. 주가는 올해만 110% 이상 급등했다. 동시에 엔비디아를 비롯해 GPU와 중앙처리장치(CPU) 칩 제조사인 AMD 주가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GPU와 CPU 등 프로세서 시장은 전통의 인텔과 신흥강자인 엔비디아와 AMD 등 미국 칩 제조사가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이들에 대한 기대감을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업체 주가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 목소리가 많다.

      한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디지털 전환이나 컴퓨팅 수요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동떨어져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하반기 들어서 메모리 반도체에 한해 수혜 논리가 맞물려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글로벌 기준 연산 수요 성장이 미국 업체의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재고소진 국면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식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상반기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에 적용되던 수혜 논리는 불과 몇개월 만에 악재로 판명났다.

      PC용 DRAM 현물가는 여전히 우하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PC용 DRAM의 현물가가 계약가보다 아래에 있을 땐 수요가 부족한 상황으로 파악한다. 8월 들어 DRAM 현물가격은 거래량 부족으로 인해 연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선 하반기 중 지난해 말 저점 이하로 떨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상반기 팬데믹으로 인한 수급불안과 데이터 트래픽 수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고객사 전반의 재고축적을 위한 수요가 현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증권가에서도 고객사 재고가 3분기 중 최고치를 찍고 연말까지 정상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격하락이 지속되고 있기 떄문에 회복시점을 점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미국 상무부의 화웨이 제재 심화 및 전세계 코로나 확진 정도 등 거시변수 역시 불확실성을 더하는 요인이다. 지난주 발표된 3차 제재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화웨이 수요가 공백 상태로 남게 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에 미칠 영향도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양사 모두에게 화웨이는 애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주요 고객이다.

      이 때문에 2분기 호실적에도 신통치 않던 SK하이닉스 주가는 당초 8만원 안팎에서 횡보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1차 팬데믹 시점과 비슷한 수준으로 급락했다. 2분기 실적발표 당시만 해도 대부분 악재가 반영된 것으로 보던 증권사들도 하반기 실적전망을 연이어 하향조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7월 들어 달러화가 약세전환하며 외인이 복귀할 것으로 전망하던 것과 달리 혼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증권사 투자전략 담당자는 "최근 조정을 거치면서 외인과 기관 등 시장참여자 사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충분히 싸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얼마나 가격을 올리겠다는 방향성은 보이지 않는다"라며 "최근 급락 이후 기술적 반등 때에도 거래량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등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