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서 IPO?" 고민하는 한화종합화학...'실리'는 코스피, '모양새'는 뉴욕
입력 2020.08.31 07:00|수정 2020.09.01 09:48
    외국계 IB 8곳에 RFP 발송…거래소 별 상장전략 요구
    사업기반·대기자금·승계구도 등 한국이 이상적이지만
    일감몰아주기 갓 벗어난 한화…국내 기관 간섭은 부담
    美 사업 분주…“글로벌 성장 교두보 원할 것” 평가도
    • 한화종합화학이 한국과 미국 중 어느 곳에 상장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주요 사업 기반이나 인지도, 한국 주식 시장의 열기 등을 감안하면 국내 상장이 최선의 선택이다. 반면 그룹 승계구도에서 중요한 위치인 회사를 국내에 상장했을 때 견제가 심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스럽다. 글로벌 진출 의지가 강한 그룹 수뇌부가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눈도장을 찍기 위해 다소의 불편함은 감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종합화학은 이달 외국계 증권사에 상장 자문 관련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다음주까지 제안서를 받을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2015년 삼성그룹과 빅딜로 한화종합화학(옛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며 늦어도 2022년까지는 상장을 하기로 약속했다. 대기업간 거래라 별도의 적격상장(Qualified IPO) 조건은 없지만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삼성그룹은 한화그룹에 합의한 조건 대로 되사달라고 요청할 권리(풋옵션)를 갖는다. 상장은 일단 삼성그룹의 회수 지원 목적의 성격이 짙다. 삼성은 2018년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철회한 바 있다.

    • 한화종합화학이 가장 수월하게 상장할 수 있는 곳은 국내 유가증권시장이다.

      한화종합화학은 폴리에스테르섬유, 페트병의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이 주력이다. 국내 1위 PTA 회사로 최근엔 롯데케미칼에도 PTA를 공급한다. 각국에 수출도 하지만 핵심 기반은 한국에 있다. 본사 위치나 인지도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상장이 가장 적합하다. 코로나 등 변수가 있으나 수백조원의 대기자금이 증시만 쳐다보는 등 상장 환경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상장 유지 비용도 해외보다는 국내가 낮다.

      한화종합화학이 전통 제조, 그 중에서도 성장성이 떨어지는 산업이란 약점은 있다. 그러나 이는 해외라고 다르지 않다. 선진국일수록 폴리에스터보다 천연 섬유 수요가 많다. 선진 시장에서 오히려 가치평가가 낮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타국 기업이 상장한 후 주목을 받는 사례도 드물다. 초기부터 나스닥 상장을 천명했던 SK바이오팜의 최종 행선지도 유가증권시장이었다. 국내 1위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

      한화종합화학은 한화그룹 후계구도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한화종합화학의 가치가 높아져야 궁극적으로 향후 김동관·김동원·김동선 3형제가 ㈜한화 주식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삼성물산처럼 한화종합화학도 그룹 내 역학구조 때문에 상장 이후에도 가치가 높아질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있다. 상장 가치에는 그 기업이 가진 배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재벌 및 승계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곳도, 기대감을 반영해 줄 곳도 국내 증시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삼성의 투자회수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한국에 사업장이 있는 회사를 굳이 해외에 상장할 필요는 없다”며 “향후 한화그룹이 한화종합화학 지분을 매각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한국에 상장해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성이든 가치산정이든 실리를 따진다면 국내 상장이 가장 나은 셈이다. 그러나 한화그룹의 움직임을 보면 해외 상장에 대한 관심도 낮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종합화학이 우선 RFP를 발송한 곳은 외국계 IB 8개사다. 제안서에는 상장 시기와 기업가치 산정 방식, 각국 거래소들에 대한 평가도 담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ECM 시장에서 활약하는 곳이 몇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IB에 의견을 구하려는 모습이다. 모수를 넓혀야 국내 외에 해외 상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한화그룹이 해외 상장, 현실적으론 미국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시선이 있다.

      한화종합화학이 그룹에서 중요한 위치인 만큼 시장의 주목도도 높다. 한화그룹은 3형제가 지분을 가진 시스템통합(SI) 계열사 한화S&C(현 한화시스템)가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다가 최근에야 무혐의 결정을 받은 상황이다.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상장 과정 중 한국거래소나 감독당국에 의해 기업 사정이 노출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시기다. 상장 당사자는 아니라도 온 사정당국의 시선이 모인 삼성물산이 주주인 것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공시 의무가 가볍진 않지만 적어도 ‘오너 일가’와 연계지으려는 시선은 덜 수 있다.

      한 IB 임원은 “해외에 상장을 하려면 사업 기반이 있거나 매출 비중이 높다는 등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한화종합화학은 그렇지 않다보니 생뚱맞은 느낌”이라며 “한국은 유관기관들의 간섭이 많고 국민연금 등의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 시장을 보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한화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눈도장을 받고 싶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한화그룹은 미국에서 기존의 태양광은 물론 다양한 영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작년 이후 항공기엔진 부품사 EDAC, 소프트업체 그로윙에너지랩스(GELI) 등을 인수했고, 사솔의 미국 내 에탄크래커(ECC) 화학단지 인수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특히 한화종합화학은 한화에너지와 미국 수소트럭 니콜라 투자로 성과를 냈고, 미국 내 수소 충전 인프라 구축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다른 IB 임원은 “김동관 부사장이 한화그룹을 글로벌 회사로 키우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한화종합화학 상장으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종합화학 관계자는 상장에 대해 “검토 초기 단계라 특별히 정해진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