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도 '동학개미' 우대? 은성수 발언에 술렁이는 증권가
입력 2020.09.01 07:00|수정 2020.09.02 10:10
    은성수 "고액자산가일수록 유리해 개선 필요"
    업계선 '개인에 유리한 방식'일 가능성 무게
    소액 우선배정·증거금 상한 등 시나리오 다양
    개선안에 장기적 안목 담겼을지 우려 목소리도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공모주 물량배정 방식을 손보겠다고 예고했다. 청약증거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주식을 배정받는 현행 방식이 고액자산가에게만 유리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필요성을 언급한 것 외 구체적 복안을 내놓지 않은 만큼 금융투자 업계도 술렁이고 있다.

      공모시장에 몰려드는 개인투자자가 사상 최고조에 이른 만큼 개선안이 개인에 유리한 방식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최근 공모리츠 상장에서 첫 선을 보인 우선배정 후 경쟁입찰 방안 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유동성 장세가 장기화하더라도 공모주 시장이 항상 올해와 같기 어렵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정 대박 사례를 빌미로 섣불리 제도 개선에 나서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7일 은성수 위원장은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현행 개인 투자자 간 배정 방식이 고액자산가일수록 유리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모시장이 수억원 규모 청약증거금을 감당할 수 있는 일부 자산가의 무위험 수익처가 된다는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개선안이 구체화할 경우 개인투자자에 좀 더 유리한 방향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앞서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의 역할이 부상하고 있는 만큼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를 균형 있게 대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공모주 배정방식 개선안을 두고선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우선 최근 제이알글로벌리츠 상장 당시 처음 등장했던 소액 우선배정방안이다. 제이알투자운용은 당시 일반공모 4800만주 중 절반인 2400만주 한도 내에서 100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우선적으로 배당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투자자가 200만원을 청약할 경우 100만원에 해당하는 200주까지는 우선적으로 배정하고 나머지 액수를 경쟁입찰로 돌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발행가가 5000원인 상장리츠였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밴드가가 훨씬 높게 형성되는 기업 상장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며 "한도를 정해두고 일반공모에 참여하는 투자자 모두에게 일정 물량을 배정할 경우 역으로 미달이 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이알글로벌리츠 청약은 0.23대 1을 기록해 미달 사태를 겪었다.

      이보다는 청약증거금에 캡(한도)을 씌우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1인당 청약 한도는 증권사마다 다르다. 그러나 청약증거금율 50%를 고려하더라도 주머니사정만 뒷받침한다면 수십억원을 들여 한도까지 증거금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지난 SK바이오팜 상장 당시에도 수십업원 규모 증거금을 넣은 사례가 회자하기도 했다. 소액투자자에 불리하다는 당국의 인식도 여기에서 출발한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공모물량 분배를 공정하게 한다는 논리로 한도를 규제하는 방안이 나올 경우 금융투자 업계의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모주 배정 우대 혜택은 증권사의 '영업 수단'으로 쓰여왔다. 일정 자산 이상을 위탁한 고객이나 퇴직연금을 맡긴 고객에게 일반 투자자보다 더 많은 공모주를 주는 것이다. 실제 SK바이오팜 공모 흥행이후 해당 거래에 참여한 증권사들은 이를 퇴직연금 등 상품 유치 수단으로도 활용해왔다.

      어떤 방향으로 정책이 나올진 아직 알 수 없지만, 은 위원장의 말을 '많은 자산을 맡긴 고객에게 우대 배정을 못하게 하겠다'라고 해석하면 이 같은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일각에서는 공모 주관을 맡은 증권사의 공모가 산정 및 배정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증권사의 책임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진행해 온 그간의 금융위 기조를 완전히 역행하는 정책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증권사 IPO 담당 한 관계자는 "최근 고액자산가 고객 중에는 수억원을 공모주 투자로만 돌리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라며 "당국이 이를 손볼 경우 화살이 엉뚱한 방향을 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이 장기적 안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현재 공모시장 분위기가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와 코로나 이후 정책대응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시적 이벤트일 가능성 때문이다. 시중 유동성이 비정상적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수익처를 찾는 자금이 언제까지 공모시장을 향할지 단언할 수 없는 만큼 섣불리 손을 댈 경우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아직까진 개선 가능성만 언급한 만큼 업계 의견을 모은 뒤 현재 예상과는 다른 방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SK바이오팜 때도 그랬지만 최근 증시 입성을 준비하는 발행사 중에는 과거 제조업과 달리 직원 수가 적어 자사주 물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며 "이를 기관투자자가 아니라 일반공모 물량을 돌릴 수 없느냐는 문의가 많았는데 당국도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 개정안의 포커스가 그 쪽으로 맞춰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