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주느니 이자 낸다?...저금리 속 기업들 구미 당기는 자사주 매입
입력 2020.09.02 07:00|수정 2020.09.03 09:47
    SK텔레콤, 5000억 규모 자사주 매입 결정
    저금리 효과, 1%로 조달해 4% 배당 아껴
    자사주만 사도 이득…M&A 등 부수효과도
    “저금리 활용한 재무관리 본격화 할 것”
    • 대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서기 우호적인 환경이 갖춰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며 주주에 배당해야 하는 자금보다 자사주 매입을 위해 들어가는 금융비용이 더 낮아진 상황이다. 자사주를 사는 것만으로도 이익이 난다. 자사주는 경영주의 지배력 유지와 주가 상승, M&A 대가로도 활용되는 등 쓰임새가 많다보니 앞으로도 자사주를 매입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사주 매입은 보통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진행된다. 회사가 이를 통해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다. 유통 주식수가 줄면 남은 주주들의 주식 가치도 높아진다. 올해 초와 같은 폭락장에선 주가방어를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저금리가 이어지며 자사주 매입을 통해 경제적 이득이 발생하기도 한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실질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우량 대기업은 배당성향과 조달금리 차이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지난 27일 이사회를 열어 앞으로 1년간 5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의결했다. 회사는 최근 수년간 4% 내외의 현금배당수익률을 보여 왔다. 5000억원 규모 주식이라면 배당은 매년 200억원인가량이다. 이를 배당 의무가 없는 자사주로 보유하게 된다면 온전히 아낄 수 있다.

      SK텔레콤은 앞으로 이래저래 쓸 돈이 많다. 가진 현금보다는 외부 자금을 활용해야 하는데 조달 비용도 낮다. 회사는 올해 초 3년물 채권을 이율 1.644%에 발행했다. 1년물이라면 그보다 더 낮을 것이고, 5월엔 기준금리 인하도 있었다. 실상 1% 초반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자사주 매입을 위해 돈을 빌리더라도 1년에 금리 차이만으로도 150억원가량을 버는 셈이다.

      이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다른 대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포스코는 지난 4월 1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포스코 역시 4% 내외 배당을 해왔고, 1%대 자금 조달이 가능해 차익을 거둘 만하다. 작년부터 선제적으로 많은 자금을 마련해 여력도 충분하다.

      기업들 입장에선 점차 차입금 규모 자체보다는 현금 창출력, 주가 등을 챙기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신용평가사들도 당장의 부채비율보다는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느냐를 더 중점적으로 보는 추세다.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가능한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그 자금을 활용하는 것도 기업의 역량으로 받아들여진다. 올해는 마침 정부에서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한도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해 주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팀쿡 체제 이후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 정책을 쓰고 있는 애플이 대표적이다.

      애플은 2012년까지만 해도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이어왔으나 팀쿡이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후 차입금을 늘려갔다. 2013년 거의 20년만에 회사채 발행을 재개했다. 금리가 낮을 때 싸게 조달한 자금을 자사주 매입 및 배당에 썼다. 트럼프 취임 후 해외 현금의 송금 세율이 낮아지자 회사채 발행을 멈췄다가, 작년 이후 기준금리가 인하하자 발행을 재개했다. 애플은 올해 코로나 국면에서 385억달러 규모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했다. 주가는 꾸준히 올라 최초로 시총 2조달러를 넘는 기업이 됐다.

      자사주를 확보해 두면 향후 활용도도 높다. 매입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기존 경영주의 지배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남은 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올라간다. M&A 재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KB금융지주는 KB손해보험을 완전 자회사화 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했다. 자사주를 기반으로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그룹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자사주를 카카오 주식과 교환했는데 이미 2배 이상의 평가 이익을 거두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예전 같으면 자사주를 사기 위해 부채비율이 올라가면 위험한 기업이라고 봤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로 인한 기업가치 상승에 더 집중한다”며 “본격적 저금리 기조에 맞춘 기업들의 재무관리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