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기회 노리는 로펌들…'투자 전담팀' 구성 고민도
입력 2020.09.02 07:00|수정 2020.09.01 17:18
    스타트업 지분투자 제의 거절해온 대형로펌
    투자수익 둔 파트너 분배이슈 걸림돌
    로펌 내 전담투자팀 만들려는 움직임도
    • 파트너 변호사들 간의 분배 문제로 스타트업 지분투자 제의를 마다해 왔던 로펌들이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로펌 내에 투자 대상 기업 발굴부터 투자금 회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전담하는 투자조직을 둬 여유자금으로 운용하는 안이 거론된다. 투자 수익과 함께 장기적으로 일감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엿보인다.

      최근 모 스타트업 대표는 변호사로부터 "시리즈A는 자문료를 받지 않는 대신 지분 5%를 받고, 시리즈B 이후로는 보다 저렴한 자문료를 제공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본 변호사가 자문료 대신 지분을 요구하면서 투자 의사를 밝힌 것이다. 수임료를 내기엔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스타트업 쪽에서 먼저 회사 지분을 대가로 자문해줄 것을 제안해오는 경우도 있다.

      벤처캐피탈(VC) 투자 법률자문을 주로 맡거나 스타트업 전문로펌에 속한 변호사들은 스타트업·벤처기업과 접촉 기회가 많다 보니 투자 기회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로펌 공식적으로 투자하는 경우는 아직 없지만 변호사 개별적으로 지분투자에 나서는 사례는 종종 들린다. 투자 '대박'을 터뜨릴 만큼 두각을 드러낸 기업이 많지는 않다보니 투자 수익도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스타트업 지원 전담팀을 꾸리거나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에 분사무소를 내 상주하는 대형로펌 변호사들에게도 투자 기회는 많았다. 지분으로 자문료 받는 데 따르는 법률상 문제도 없어 부담감이 적다. 다만 대형로펌 특성상 지분 투자에 나서기엔 쉽지만은 않은 사정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파트너 변호사들 간 투자수익 분배 이슈가 거론된다.

      판교에 상주하는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우리 로펌도 지분 투자 제의를 받을 때가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제의를 거절하는 경우가 다수 있다"면서 "파트너십 문화다 보니 '지분 투자에 따른 수익을 파트너들 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다. 수익이 아니라 손실이 날 경우엔 배당에서 제할 수도 없다 보니 골치가 아플 상황이 많다. 인생을 걸고 창업 한 사람들에게 먼저 지분을 제의하기 쉽지않은 사정도 있다"라고 말했다.

      직업윤리나 고질적인 비용 문제로 여러 투자 제의를 지나쳤지만 수익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도 엿보인다.

      파트너 변호사의 지분 투자 '대박' 사례로 일컬어지는 '윌슨 손시니(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가 로펌업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윌슨 손시니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로펌 중 하나로 구글 창업 초기부터 협력해온 자문사다. 초기엔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던 구글이 파트너 변호사들에게 자문료 대신 지분을 제공했고, 이들은 구글이 상장하면서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로펌도 초기부터 관계를 맺어온 덕에 기업공개(IPO)나 주요한 딜 자문을 맡아 수익을 챙겼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접촉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변호사들 내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대안을 고민하는 분위기도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로펌 내에 별도로 전담조직을 설립해 스타트업 지분투자에 나서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로펌 여유자금을 활용해 투자 대상 기업 발굴부터 지분 투자, 투자금 회수, 수익 분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전담하는 파트너 공동의 조직을 꾸리는 식이다.

      벤처투자에 정통한 한 파트너 변호사는 "윌슨 손시니 사례처럼 초기 지분투자로 대박이 난 파트너들이 많은데 추후 특정 파트너에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점은 우려된다. 로펌 내에 전담 인베스트팀을 두고 로펌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는 조직이 수익률이 좋다고 들었다. 우리 로펌도 언젠간 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로펌이 투자 기회를 잘 보는 면도 있고 변호사 입장에서도 지분을 넣어놓으면 내 일처럼 자문을 잘 할 수밖에 없다. 투자 받은 기업 입장에서도 계속 우리에게 일감을 줄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관계를 맺은 스타트업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 추후 IPO나 M&A 등 대형 일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풀이된다.

      법무법인 세종, 광장, 태평양 내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스타트업 지분투자에 대한 논의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투자 대박' 이후 변호사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스타트업 전문로펌 소속 변호사는 "새 먹거리를 찾는 로펌 입장에서 지분투자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전담조직 또한 분배비율에 따라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수임자와 수행자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둘 것인지, 로펌과 변호사 간 분배는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변호사 이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로펌 입장에서도 신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란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