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重 '증자 도우미' 자처한 연기금...한 달간 500만주 '묻지마 매수'
입력 2020.09.08 07:00|수정 2020.09.10 09:49
    최근 한 달간 유일한 순매수 주체...주가 86% 급등
    연기금 폭풍 매수세 덕 두산重 증자 매우 원활해져
    테마주 단타 투자? 시세차익 봤지만 실현은 '글쎄'
    •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 두산그룹을 위한 해결사로 나섰다. 최근 한 달간 두산중공업을 집중매수해 주가를 급등시키고, 이를 통해 원활한 유상증자를 가능케 해준 주체가 바로 연기금인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증자 추진이 불 보듯 뻔했던 회사로 꼽혀왔다. 현 발행 주식 수의 50%에 가까운 신주 발행으로 주주가치도 대폭 희석될 전망이다. 늘린 주식 수만큼 증자 부담도 추가로 짊어져야 한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혜택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매매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최근 한 달 동안 525만주, 570억여원어치의 두산중공업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이 기간 중 두산중공업의 유일한 순매수 주체가 연기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연기금의 두산중공업 매수는 지난달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무려 13거래일간 매일 평균 39만주(43억여원), 일일 최대 85만주(131억여원)의 주식을 매집했다. 이 기간 두산중공업 주가는 9000원에서 최대 1만6750원으로 86% 급등했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연기금의 매수세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두산중공업은 7월 중순 풍력발전 등 '뉴딜 테마'로 반짝 급등 후, 8월 들어 거품이 빠지던 중이었다. 두산그룹 자구안이 구체화하며 유상증자 가능성은 점점 커지던 시기였다. 굳이 이 시기에 주가를 급등시키며 투자를 집행할 상식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두산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연기금을 움직여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떠돌고 있다"며 "8월말부터는 급등세를 지켜본 개인투자자들까지 단기매매에 뛰어들며 두산중공업 주가 변동성만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기금의 매수세와 이에 따른 주가 급등으로 인해 두산중공업의 유상증자는 훨씬 수월해졌다.

      연기금이 순매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인 8월 중순 이전 한 달간 두산중공업의 가중산술평균주가는 8630원에 불과했다. 할인율을 고려하면 최초 증자 발행예정가는 6900원 안팎이 유력했다.

      두산중공업은 액면가가 5000원이다. 증자 공시 이후 주주가치 희석 우려와 신주 물량부담으로 인해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떨어지고, 증권발행규정상 액면가 이하로 낮출 수 없는 신주 발행가가 5000원으로 고정되면 증자는 실패할 가능성이 대폭 커진다. 액면가 이하 증자를 진행하려면 주주총회 결의가 따로 필요한데다, 자기자본이 차감돼 자본확충 효과도 크게 줄어든다.

      이 같은 난제가 연기금의 '묻지마 매수'로 인해 일거에 해결된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할인율을 적용하고도 최초 발행가로 1만원 이상의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예정 발행가가 현 주가를 크게 밑돌며 '매력적인 증자'라는 인식을 줄 수 있게 됐다. 당초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됐던 증자 규모가 1조3000억원으로 커진 것 역시 최근 주가 급등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번 투자를 통해 연기금은 무엇을 얻은 걸까.

      시세 차익은 상당한 수준이다. 최근 한 달간 연기금의 두산중공업 주식 평균매수가는 1만880원 안팎이다. 예상 평가이익은 49.8%에 이른다. 물론 이를 현실화하는 건 쉽지 않다. 매수 주체가 연기금뿐인 상황에서, 대규모 물량을 시분할 거래로 수익 실현 하려다간 폭락을 면하기 어려울 거란 지적이다.

      이미 두산중공업 주식의 변동성은 매우 커진 상태다. 두산중공업이 증자를 공식화한 4일 두산중공업은 장외에서 하한가(-10%)로 직행했다. 7일 장 개장 직후 10% 이상 급락했다가 40분만에 +3%로 양전환했고, 다시 20분 뒤엔 -5%로 음전환 하는 등 널뛰기를 반복했다.

      늘어난 주식 수에 따른 증자 의무는 부담이다. 최근 한 달간 새로 매수한 신주 525만여주에만 따라붙는 증자 배정 주식 수가 202만여주다. 예정 발행가액 기준 216억여원 규모의 부담이다.

      물론 증자에 참여하지 않고 신주 배정 기준일인 10월15일 이전에 모두 팔고 떠날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 단기 물량 출회에 따라 변동성이 커지게 된다. 연기금이 '고작 두 달'짜리 단타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주식을 보유하면서 증자에 참여할 권리인 신주인수권만 매도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신주인수권 거래 시세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대규모 신주 발행으로 인해 기존 주식의 주당 가치는 증자 이전의 3분의 2로 떨어지게 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두산중공업 시가총액은 주가순자산비율(PBR) 2배를 넘어서 2017년의 고점(0.9배)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라며 "저평가주 가치 투자라고 보긴 어렵고, 테마주 투자라고 하면 연기금으로서 욕을 먹을 일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나 '음모론'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별종목에 대한 운용전략 내용은 자세한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