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만 하면 어디든"...국정원에서 교회까지 이색 기관출자가들
입력 2020.09.10 07:00|수정 2020.09.11 10:48
    펀딩 경쟁 심화 속 이색 LP들도 주목
    국정원 공제회 조심스런 행보 눈길
    총회연금은 PEF 출자 정례화 움직임
    전문성은 의문…”우선 선호하진 않아”
    •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늘고 자금조달 경쟁이 치열해지며 다소 생소한 소형 기관출자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 직원, 퇴직 목회자 등 다양한 집단이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단체마다 특색도 뚜렷하다. 기존 LP들보다 자산 성장세는 더 빠를 수 있어 앞으로도 주목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까진 운용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 우선적으로 선호되는 분위긴 아니다.

      국내 PEF 출자자(LP)는 크게 국민연금을 위시한 연기금·공제회, 그리고 금융회사와 일반법인 두 축으로 나뉜다. LP의 다양성이 부족하니 운용사들도 매번 같은 곳을 찾는다. 자리를 잡은 곳은 큰 손들을, 그렇지 않은 곳은 제2금융권이나 친분있는 기업에 손을 벌리는 식이다.

      PEF 운용사가 우후죽순 늘어나니 기존에 알려진 LP들만 찾아선 펀드를 결성하기 어려워졌다. 신생 운용사나 프로젝트펀드 위주로 커리어를 쌓아온 곳, 시장성이 떨어지는 관(官) 주도 펀드를 만드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아직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자금운용 욕구가 있고, 출자받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야 한다.

      한 금융사 출신 PEF 운용사 대표는 “아직 시장에서 이름을 쌓지 못한 운용사가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 투자 매력도가 낮은 관제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엔 돈이 있다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색 운용사 중에선 양우회가 눈길을 모은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생활증진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단체로 1970년 중앙정보부 시절 설립됐다. 국정원 간부들이 운영 요직을 맡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에 드러난 내용은 많지 않은데 투자 문제로 잡음이 불거진 적은 많았다. 선박, 게임, 항공기, 주택개발 등 다양한 펀드에 투자했으나 성과가 좋지 않아 자산운용사들과 소송전을 치르기도 했다.

      PEF 출자도 간간이 진행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기관 관련 단체다 보니 접촉이 어렵지만 PEF 업계에선 만나봤다는 인사들이 적지는 않다. 명함을 받아보니 이름과 전화번호만 써 있다는 인사도 있고, 명함조차 주지 않고 돌아갔다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사무실 근처 커피숍의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데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는 평이 많았다. 운용 규모는 베일에 싸여 있는데 수십억원 이상의 출자는 부담스러워 한다는 후문이다.

      다른 금융사 출신 PEF 운용사 대표는 “양우회는 주로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며 “증권사도 접촉하지만 법인영업부에서도 1명만 정해서 만나는 등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총회연금재단은 양우회보다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 1960년 시행된 종교계 최초의 연금제도로 운용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989년 지금의 별도법인 형태로 만들었다. 운용자산 규모는 2018년 4531억원에서 작년 5037억원으로 11% 이상 늘어나는 등 성장 속도도 빠르다. 같은 기간 수익률은 3.45%에서 6.22%로 높아졌다.

      총회연금도 이런 저런 투자에서 잡음이 없지 않았다. 보통 종교계는 예금이나 채권 등 원금 보장형에 가까운 보수적 투자 성향이 있지만 총회연금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과거 동양그룹 회사채에 수백억원을 투자했다 회수에 차질을 빚었다. 그린손해보험(현 MG손해보험) M&A 땐 수익률을 보장받고 참여했는데, 이후 인수 PEF는 수익보장금지 규정 위반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엔 보다 체계를 갖춰 대체투자에 나서는 모습이다. ‘기금운용실’을 꾸리고 운용 인력도 초빙하는 등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과거엔 “아직 규모가 작아 기대 수익률이 낮은 블라인드펀드 출자는 어렵다”며 고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엔 정례적으로 PEF 운용사 공개 모집에 나서고 있다. 올해는 IMM인베스트먼트, 스톤브릿지캐피탈 등 4개사가 각각 100억원씩 받아갔다. 소형사들도 대거 관심을 가졌지만 유명 운용사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쌓이는 자금을 굴려야 할 기금 성격의 단체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교정공무원의 복지증진을 위해 설립된 교정공제회나 국세청 상조모임인 세우회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아직 PEF 출자에 나서려는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 부동산 투자 등에선 성과를 내기도 했다. 갈수록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향후 PEF 업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교육관련 기관들도 주목을 받을 만하다. 해외에선 대학이나 교육재단의 PEF 시장 출자 비율은 10%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교육기관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일반 사모펀드 등을 통한 투자는 종종 집행해 왔다. PEF 영역에선 서울대학교발전기금이 가장 활발히 움직였다. 구성원 복지보다는 말 그대로 대학발전을 위해 운용되는데 이미 10여년 전부터 블라인드, 프로젝트 PEF 출자를 집행해 왔다.

      물론 앞서의 LP들이 가장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대형 LP들과 달리 PEF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화법 자체가 다를 수도 있다. 아쉬워서 찾기는 하지만 들이는 공에 비해 얼마나 성과를 얻을 지도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PEF 운용사 임원은 “생소한 LP들은 인맥을 통해 물어물어 찾아가기도 하지만 출자 성과로 이어질 확률은 낮다”며 “너무 돈이 모이지 않거나 자투리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선적으로 찾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