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 Column]
정몽규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포기' 손익계산서
한지웅 기자 | hanjw@chosun.com | 2020.09.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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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사실상 포기했다. 당분간은 계약 파기의 책임이 산업은행에 있느냐, 아니면 HDC그룹에 있느냐에 이슈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금을 둘러싼 소송전도 예상되는데 HDC그룹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M&A 과정에서 신의를 저버린 행위와 산은과의 마찰로 인한 정부의 낙인 등 그룹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잠재적 이득도 무시할 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은행은 오는 11일 HDC현산에 공식적으로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매각의 계약 파기를 통보할 예정이다. 계약의 주체는 표면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기 때문에 공문 발송 또한 금호그룹이 맡게 된다.

HDC현산이 다른 인수후보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리며 이번 M&A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과 달리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펼쳐진 경영권 협상은 순조롭지 못했다. 계약금 2500억원을 납입한 직후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는 잠잠해 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 여파는 가뜩이나 재정 위기를 겪고 있던 아시아나항공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장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HDC현산은 계약 예정일이었던 4월을 훌쩍 넘긴 현재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답답한 산업은행은 새로운 거래 조건을 제시했으나 HDC현산은 이에 응답하지 않았다.

돌려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2500억원의 계약금을 비롯한 HDC그룹이 감당해야 하는 유무형의 손실은 분명하다.

이번 거래는 HDC그룹, 즉 정몽규 회장이 밝힌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의 첫단추를 꿸 수 있는 기회였다. 정 회장은 종합부동산회사(디벨로퍼) 사업에 진출, 2017년 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빅 트랜스포메이션(Big transformatio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디벨로퍼로 탈바꿈하기 위한 1조원 이상의 투자를 단행했다.

디벨로퍼 성장스토리를 그리기 시작한지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을 맺자 정 회장은 돌연 HDC그룹이 모빌리티그룹으로 변모할 것을 선언했다. 시장의 크고 작은 불안감을 불식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한 차원일 수 있지만 ‘HDC그룹의 장기적인 방향성이 대체 무엇이냐’에 대한 의문이 뒤따랐다. 신용평가사들은 HDC현산의 재무위기에 주목했고 투자자들은 떠났다. 지난해와 비교해 주가는 여전히 반토막이 난 상태다.

협상 과정에선 HDC그룹의 거래를 주도한 임원들의 M&A 능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잔금 납입 전통합 작업을 먼저 서둘러 진행하는 사례는 M&A 과정에서 극히 찾아보기 어렵다. 7개월의 실사에도 불구하고 3개월 실사 연장을 요구를 한데 이어, 협상장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여론전만 펼치는 모습에선 인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기 보단 계약 파기에 대한 명분을 쌓으려는 모습이 묻어났다. 아이러니하게 이 같은 태도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즉 프로(?)들만 상대했던 산업은행을 상당히 당황케 했다. 침묵으로 일관한 HDC그룹은 오히려 거래의 주도권을 뺏어올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실사를 통해 드러난 잠재부실, 인수를 확정한 이후 막대한 자본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계약을 재고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산업은행 그리고 금호그룹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은 점, 그로 인해 아시아나는 물론 HDC그룹 계열사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을 여전히 끌고 왔다는 데에 대한 비판에서는 자율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산업은행 주도의 거래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또는 ‘정부발 수주에서 상당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란 투자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HDC현산이 짊어져야 할 무형의 손실이기도 하다. 또한 앞으로 국내에서 진행될 크고 작은 M&A에서 거래 당사자들이 HDC현산을 과연 카운터파트너로 받아들일 것인 지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사실 HDC그룹은 재계에서 주목받는 기업은 아니었다. 아이파크로 대표되는 HDC현산의 이미지는 재계를 이끌어 가는 그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마저도 경쟁 건설사들의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과거의 M&A는 부동산114, 오크밸리 리조트 인수 등이 전부였다.

범(汎)현대가의 맏형격인 현대자동차는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룹. 유통가에서 입지를 탄탄히 굳히며 M&A 업계의 VIP 대우를 받는 현대백화점. 역대 최대 규모 M&A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멘티브를 인수한 KCC. 이와 비교하면 HDC그룹의 행보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은 HDC그룹이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조2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한 재무구조가 탄탄한 알짜 회사, 그리고 향후 그룹을 변모시키기 위한 투자 의지를 가진 회사라는 점이다.

이미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3000억원의 회사채 발행과 3200억원의 유상증자, ABL발행 및 차입 등을 통해 1조7000억원 이상을 마련해 뒀다. 신용등급(A+)에 ‘부정적’이란 꼬리표가 달려있지만 아시아나인수 포기는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고, 이에 따라 추가 차입 여력도 일정 수준 남아있다.

일단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대신 HDC현산의 최대 프로젝트인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에 투입(토지대 잔금 납부)되겠지만, 나머지는 회사의 대기 자금으로 남는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대기업들이 자산매각을 통해 현금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을 비교해 본다면 재무구조 안정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HDC그룹이 인수포기로 인해 현금유출을 막았고, 인수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인수 대기 자금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M&A 시장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이번 거래에서 HDC그룹의 상당히 신중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당분간은 가장 자신있는 주력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2008년 한화그룹의 극적 반전을 이끌어 낸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 선언과 같이 HDC그룹이 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으로 여기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의 인수를 포기한 이후 기업가치가 급격히 상승했고, 조선업이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한화그룹이 역대 가장 잘 한 선택’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화그룹은 계약금 반환 소송을 8년 동안 진행, 결국 3000억원의 계약금 중 절반을 돌려 받았다.

정몽규 회장의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변모 선언’이 아직 유효하다면, 아직은 기회가 남아있을 수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현대차·현대백화점·KCC·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의 지원이 예상됐던 만큼, 친족 그룹 간 모빌리티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방안을 찾아낼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스마트 시티’ 건설에서 HDC현산이 일정 수준 참여할 기회도 장기적으로는 예상해 볼 수 있다.

HDC현산의 투자자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산업은행은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아시아나항공을 앞으로 수년간 경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동걸 행장이 또 한번 산업은행을 이끌어야 할 그럴싸한 명분이 되기도 했다. 거래를 이끌었던 주관사는 재매각 과정에서 또 한번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양측의 법률대리인은 앞으로 진행될 소송을 수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거래 무산이 남긴 후폭풍은 고스란히 금호그룹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10일 07:00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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