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입질도 없었던 산업은행...다시 지뢰밭 들어온 이동걸 회장
위상호 기자 | wish@chosun.com | 2020.09.14 07:00
Edited by 현상경 부장 | h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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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성과 제자리인데 코로나 중책까지 얹어져
공보다 과가 부각될 듯…요직이지만 하마평도 없어
국책은행 맏이로서 체면 구겨…”임기 다 채울지 의문”

이동걸 회장이 산업은행 역사상 네 번째로 연임하는 영예를 맞았지만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 회장 1기에 벌여둔 일들은 많은데 성과는 많지 않았고, 코로나 시대에 침체하는 경제를 최전선에서 떠받치는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앞으로 '공'보다는 '과'가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자연히 수장 자리의 매력도가 떨어졌고, 흔한 낙하산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회장이 정부와 교감 속에 다시 중책을 맡았지만 언제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시한부 자리란 평가가 나온다.

11일 산업은행은 이동걸 회장이 제 39대 회장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1954년 산업은행 설립 후 수장이 연임한 것은 이번이 네번째고, 26년 만이다. 내부적으로는 일단 우호적인 반응이 많은 분위기다. 정책의 연속성을 잇는 한편, 강한 수장이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도 막아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산업은행 수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즉 청와대 눈에 들어야 갈 수 있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국민연금 등 기금에 정치권 인사가 기웃거리는 것과 달리 산업은행은 관이나 금융업계의 명망가가 ‘낙하산’으로 내려왔다. 임기 마지막해엔 으레 이런 저런 인사들이 하마평에 올랐는데 이번엔 달랐다. 거론되는 인사 폭 자체가 좁았고, 자천(自薦)조차 없었다.

몇 달 전부터 이 회장의 연임에 무게가 쏠렸다. 겉으론 이동걸 회장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와 후임인 김상조 정책실장이 이동걸 회장의 연임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실세인 이동걸 회장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가 걸림돌이다. 검증절차를 거쳐야 하는 자리는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올해 초만 해도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나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를 원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다른 면에선 그만큼 산업은행 수장 자리의 매력도가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풀지 못한 숙제는 쌓여가고 앞으로 부실 문제가 터질 가능성도 크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성과부터 마땅치 않다. 이동걸 회장이 “이번이 아니면 살 수 없다”며 대기업을 독려했던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결국 ‘노 딜’로 결론이 났다. 코로나 영향으로 거래 진행이 어려웠던 면도 있었지만 거래 조율자로서 역할은 미비했다. 아시아나 영구채 인수 등의 조건을 인수자에 제안했으나 시기가 늦었고, 실효성 있는 제안도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KDB인베스트먼트는 대우건설을 후한 값에 인수한 후 공회전 상태다. KDB생명 매각은 드디어 결실을 맺어가고 있지만 산업은행은 또 후순위 출자자로 들어가게 돼 완전한 절연은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다. 대우조선해양 M&A는 연임으로 ‘임기 안에’ 결론을 볼 수는 있게 됐지만 정말 결실을 거둘 지는 불투명하다. 한국GM, 금호타이어 등이 손에 꼽히는 성과지만 노조 문제가 계속 이어지며 뒷맛이 쓰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이미지를 끊어내겠다며 신성장 동력 육성에 공을 들였다. KDB NextONE(넥스트원), KDB NextRound(넥스트라운드), NextRise(넥스트라이즈) 등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라인업을 꾸렸으나 산업은행의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으론 부족하단 평가도 없지 않았다. 방향 자체는 지지를 받았지만 실적과 성과로 연결되기까진 갈 길이 멀다.

민간 영역과의 갈등은 계속된다. 국가급 신용도를 앞세운 산업은행의 공세에 금융사들의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SK건설의 EMC 인수금융 주선의 경우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이 대거 출사표를 냈지만 예상대로 3% 초반의 금리를 앞세운 산업은행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동걸 회장이 연임하며 임직원들에 보낸 서신에도 산업은행이 처한 현실과 고민이 엿보인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이 ①혁신성장, ②구조조정, ③조직의 변화와 혁신 등 세개의 축을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는 첫 임기 때도 기회가 날 때마다 강조하던 목표 그대로다. 목표가 같다는 것은 반대로는 산업은행이 앞으로 많이 나아가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과거의 숙제도 풀지 못했는데 앞으로 맡아야 할 중책은 더 크다. 코로나 이후 경기 침체를 최전선에서 막아내야 한다.

산업은행은 2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 비우량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특수목적기구(SPV) 등 기업 유동성 지원 업무를 도맡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20조원 규모 정책형 뉴딜 펀드 역시 중추가 되어 이끌어야 한다. 벌써부터 산업은행 노조에선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데 실적 때문에 무리하게 영업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기간산업안정기금 때도 반대 목소리를 냈었다.

코로나 이후 쏟아지는 정부 정책에 편승하려는 부실 기업들은 많아졌다. 대출 만기 연장이나 이자 유예는 물론, 조건에도 맞지 않는 자금 지원까지 해달라는 요구가 늘었다. 실적을 채우기 위해 서두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기업 중에선 두산중공업과 한진그룹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고, 아시아나항공도 추가 자금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면책을 해준다지만 부실이 생기면 그 책임과 부담은 고스란히 산업은행에 돌아간다. 산업은행 회장은 임기 후 수사 선상에 오른 경우도 많았다.

사정이 이러니 필연적으로 산업은행 회장 자리의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국책은행과 비교해도 체면을 구길 상황이다. 산업은행 회장 자리는 ‘개인 커리어의 마지막’ 성격이 짙은데, 수출입은행은 두 번 연속 금융위원장을 배출하며 ‘책임은 덜 하고 위상은 높은 자리’로 떠올랐다. 기업은행은 수출입은행 다음 자리가 됐다. 국책은행 직원들 사이에선 윤종원 기업은행장도 수출입은행을 원했으나 바른 소리를 하다 미운털이 박혀 후순위로 밀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동걸 회장이 새로운 3년 임기를 모두 채울 것이라 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 경제 상황상 공보다는 과가 부각될 가능성이 크고, 새 임기 중 청와대의 주인도 바뀌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현 정부와 책임을 함께 지고 물러나는 그림을 예상하는 시선이 많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관가에선 벌써부터 지금 자리를 맡으면 조리돌림 당하다 순장조가 될 것이란 우려가 파다하다”며 “이동걸 회장은 소신대로 지금까지 하던 일을 하겠지만 정권 말기가 될수록 교체 압력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11일 13:4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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