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혼나고 주주에 치이고…애널리스트 '수난시대'
입력 2020.09.15 07:00|수정 2020.09.16 10:05
    뉴딜펀드 비판 화제 하나금융투자 애널, 내외부 압박 언급
    주가폭락 예상한 JP모건 애널은 주주 청원 타깃 되기도
    "만만한 게 애널이냐" 애널리스트들 '부글부글'
    • 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들의 '수난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유례없는 팬데믹과 이에 따른 유동성 장세로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모델이 힘을 잃은 가운데, 정부와 주주의 외압에도 쉴 새없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음으로 양으로 언로(言路)가 막힌 애널리스트들은 '차라리 아무런 레포트를 내지 않는 게 낫다'는 자괴감까지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13일 증권가에 따르면 하나금융투자의 한 애널리스트가 최근 회사 내부 및 외부에서 상당한 수준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던 것으로 시장에는 알려졌다. 이 애널리스트는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뉴딜 펀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레포트('뉴딜금융, 반복되는 정책 지원으로 주주 피로감은 확대 중')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피드백을 두고 회사 안팎에서는 '외부에서의 압력이 있었다'는 얘기들이 쏟아졌다. 레포트가 화제가 되자 정부 부처에서 지주사에 직접 유감을 전달했고, 지주의 관리 라인을 타고 지주-증권사 사장-리서치센터장-해당 애널리스트로 '주의하라'는 언급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다만 회사 측은 "이런 얘기들이 거론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해프닝은 최근 주요 금융지주들이 한 곳도 빠짐 없이 뉴딜 펀드에 수십 조원의 출자를 약속하며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모양새를 연출하며 불거졌다. 그만큼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면 특정 애널리스트 레포트 하나조차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목표주가를 너무 낮게 설정해 주가가 떨어졌다며 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의 타깃이 된 애널리스트도 있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JP모건의 셀트리온 주가폭락 예상 레포트에 대한 조사요구'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약 1만2000명(11일 기준)이 청원에 동의했다. 확인되지 않은 일개 증권사의 일개 애널리스트가 기관과 외인의 투매를 야기했으며, 이는 의도성이 짖은 악의적 레포트라는 것이다.

      JP모건의 해당 애널리스트는 "바이오산업을 향한 시장의 낙관이 지나치다. 셀트리온의 지배구조 개편 이슈나 코로나19 치료제의 상업적 성공 같은 불확실한 요인들보다는 이익 펀더멘탈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셀트리온 주주들의 주장처럼 레포트 작성에 '악의'가 있었는지와 별개로 애널리스트 실명을 공개해 공개적으로 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일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주주들에게 목표주가와 투자의견 설정으로 합리적인 주식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만 평소에도 정부나 기업, 주주들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민감한 내용이 레포트에 담겼을 경우 회사가 나서 삭제를 요청한다거나, 주주들로부터 악의적인 공격성 메일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한화그룹으로부터 레포트 삭제를 요청받은 KTB투자증권 사례도 유명하다.

      해당 애널리스트는 한화그룹 지분구조 개편과 관련해 합병을 가정한 가설을 작성한 스팟 코멘트 형태의 레포트를 냈는데 논란이 불거진 이후 해당 레포트는 삭제 조치됐다. 당시 증권가에선 한화그룹이 오너 일가의 승계 문제를 앞두고 오히려 예민함만 드러냈다는 해석이 많았다.

      이와 비슷하게 '갓뚜기의 무게'라는 제목으로 오뚜기의 고질적인 내부거래 문제와 오너리스크를 지적하는 레포트를 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가 수위 조절을 요구받으며 외부 인터뷰를 자제했던 사례도 함께 회자된다.

      기업과 주주는 물론이고 정부까지 나서 애널리스트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증권업계에서도 답답한 심정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후진적인 투자 문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차라리 레포트 안 내는 게 최선'이라는 자포자기 심정도 눈에 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의 레포트가 외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이 드러난 단면이라고 본다.  애널리스트들의 투자의견과 밸류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서도 합당한 의견이 아니면 시장에 의해 사장될 거란 인식이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국내 투자문화는 후진적인 면이 있다"라면서 "국내 레포트를 해외로 수출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부가 압박하는 모양새는 신뢰도 추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도한 밸류를 지적하려고 해도 기업과 주주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제한을 걸고 있는데 만만한 게 애널리스트인가 싶다"며 "요즘 같은 시기엔 더욱 몸을 사리고 차라리 레포트를 안 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