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 열기 속 ‘분할의 마법’ 기대하는 기업들
입력 2020.09.23 07:00|수정 2020.09.24 16:04
    최근 주가 상승 타고 분할 움직임 꿈틀
    분할 목적 다양하지만 가치 높아야 유리
    분할 검토 늘어나지만…”역효과도 따져야”
    • 주식 시장이 호황을 이어가며 사업부를 분할한 기업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있다. 사업부 분할 목적은 경영권 승계나 비주력 사업 처리 등 다양해 일률적 잣대를 대긴 어렵다. 그러나 주식 투자 열기가 뜨겁다 보니 어떤 목적이든 기대한 효과 이상의 성과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한 기업 안에 두는 것보다 따로 시장의 가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들은 과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지배력을 강화했다. 핵심 회사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후 대주주의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사에 현물출자하고 반대급부로 지주사 지분을 받았다.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하며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확대되기도 했다. LG를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한진 등 수많은 그룹이 이 공식을 따랐다. 웬만한 대기업의 지주사 전환이 마무리됐음에도 분할 움직임은 분주하다.

      LG화학은 연내 전지 사업을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자회사를 상장해 투자금을 유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의 시가총액은 40조~50조원 사이를 오가는데 배터리 자회사도 시총이 최대 50조원에 이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LG화학을 벗어나야 제대로된 시장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림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다. 대림산업의 건설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디엘이앤씨를 설립하고, 분할존속회사 디엘은 석유화학 사업을 물적분할해 디엘케미칼을 만들기로 했다. 오너 경영 회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이 대림이엔씨 지분을 디엘에 현물출자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 ㈜두산은 작년 10월 전지박 및 첨단소재 사업(두산솔루스), 연료전지 사업(두산퓨얼셀)을 인적분할했다. 신사업이 개별적으로 평가받으면 그룹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두산솔루스는 그룹 오너일가 지분 34.88%가 4604억원에 사모펀드(PEF)에 팔렸다. 정부 정책에 따른 상승효과를 차치해도 미리 사업부를 떼내 시장의 평가를 받아 둔 덕에 오너 일가도 그룹 구조조정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인적분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는 사업회사와 소송 결과를 부담할 사업회사를 나누기 위함이다.

      CJ그룹은 작년 11월 CJ㈜ 완전자회사 CJ올리브네트웍스의 헬스&뷰티 사업부를 인적분할해 CJ올리브영을 세웠다. CJ올리브영은 최근 상장전투자(pre-IPO) 계획을 확정했다. CJ올리브영의 가치가 오를수록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들 이선호(지분율 17.97%) CJ제일제당 부장의 지분 가치도 오른다. 지분 교환을 통한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상속 재원을 마련하는데 유리하다.

      KCC는 실리콘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연내 KCC실리콘을 설립하기로 했다. 실리콘 사업의 경영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함인데, 궁극적으론 지난해 모멘티브와의 합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안고 가야할 사업인 만큼 합병을 통해 지배 지분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화그룹은 ㈜한화의 분산탄 사업을 물적분할해 코리아디펜스인더스트리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룹 오너 일가는 글로벌 사업 확장에 관심이 많은데 비윤리적 분산탄 사업이 득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분할했다. 궁극적으론 매각 절차를 밟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외에 ㈜한화의 자회사 한화솔루션의 일부 사업부를 떼내 투자유치를 받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대기업들이 회사를 분할하는 목적은 일률적이진 않다. 다만 적어도 지금의 주식 시장 호황이 득이 될 것이란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경우든, 사업부를 물적분할 해 시장 자금을 유치하는 경우든 기업 가치 평가가 높아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 시장은 세계 증시와도 동떨어져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열기가 모이며 실물 경제와 동떨어진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에서 저가·고효율의 코로나 진단키트가 나와도 국내 기업의 주가는 무관하게 유지되고 있다. SK㈜가 2011년 라이프사이언스 사업을 물적분할해 설립한 SK바이오팜은 많아야 5조원 가치로 거론됐으나 시총이 20조원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최근 기업들의 사업부 분할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기업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든 사업부를 처분하기 위해서든 높은 가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보니 주식 장이 좋을 때 미리 검토를 해두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물론 주식 장이 좋다해도 기업 분할이 반드시 득이 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양한 사업부를 꾸려 주가 변동성을 완충하던 기업이라면 사업 분할 시 주력과 떼어낸 사업 가치 모두 꺾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반도체만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요동치는 것과 달리 가전, 휴대폰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 주가는 변동성이 적은 편”이라며 “사업을 분할했을 때 대상 기업들의 가치가 망가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