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까워진 등급 강등… 재무 개선 카드 필요한 정유업계
입력 2020.09.23 07:00|수정 2020.09.22 18:22
    상반기 누적 적자 규모 커 '우려→경고'
    이전 수준 수요 회복 시기 가늠 어려워
    늘어나는 차입금…재무개선책 불가피
    • 상반기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정유사들의 신용도 강등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여파가 예상보다 확대되면서 정유사 수익성의 핵심인 정제마진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면서다. 하반기에도 실적 회복 가능성이 낮은 가운데 자산 매각 등 본격적인 신용도 방어책 준비가 필요할 전망이다.

      상반기부터 정유사를 향한 경고음은 계속됐다. SK이노베이션(AA+), SK에너지(AA+), SK인천석유화학(AA-) , 에쓰오일(AA+)의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GS칼텍스(AA+)와 현대오일뱅크(AA-)는 ‘안정적’ 등급전망을 지켰지만 실적 부진이 계속되고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

      이제는 등급 강등이 ‘우려’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신용평가는 하반기 정유사 등급평가와 관련해 “2020년 하반기 들어서도 석유제품 전반의 수급 부진, 정제마진 약세로 저조한 실적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며 비우호적인 영업여건과 실적부진, 재무부담 확대 추세 등을 감안해 3분기 실적 공시 후 업체별 신용도 검토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 올해 정유사들은 ‘최악의 상반기’를 보냈다. 코로나로 인한 석유제품 수요 위축과 유가 및 정제마진 급락이 이어졌다. 휘발유와 항공유 마진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1분기 정유사 4곳(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은 4조4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분기에는 국제유가가 다소 회복하고 비정유 부문에서 이익을 내면서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 이하 정제마진이 계속되면서 영업적자가 계속됐다.

      결국 글로벌 경기와 석유제품의 수요가 개선돼야 영업실적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제마진이 '제로'에 가까운 수치를 유지하고 있어 3분기 실적도 부진이 예상된다. 4분기 실적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항공유 수요 감소가 정제마진 회복을 막고 있지만 항공유 수요 회복은 코로나 종식 전까지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글로벌 기관들도 연이어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달 들어 올해 세계 일평균 원유 수요를 전월 예상치보다 30만배럴 낮췄다. 세계최대 정유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앞으로 세계 석유 소비가 코로나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2050년엔 석유 소비가 기존 대비 8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해 사실상 ‘석유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셈이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상반기에 비해 현재 정유사의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며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 정유사들도 사업구조 전환기에 접어든 점도 어느 정도 신용도에 반영되고 있다. 본업 정유가 업황이 좋지 않아 비(非)정유 부문을 키워야 하는데, 투자하는 과정에서 차입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 그 과정에서 재산 매각 등 재무구조 보완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도 하방 압력이 높아진 만큼 각 사별 경기 대응 능력과 이익창출력, 재무안전성 회복 정도에 따른 신용도가 차별화할 전망이다.

      상반기 ‘부정적’ 전망을 달게 된 SK이노베이션은 정유부문의 실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올해 큰 폭의 실적 부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분기 연결기준 약 1조8000억원, 2분기 4397억원으로 상반기 총 2조2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미래 먹거리’로 투자하고 있는 배터리 부문이 단기적으로 신용도나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측에선 2022년 BEP(손익분기점) 도달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실적 기여 시기는 가늠이 어렵다는 평이다. 2분기 배터리부문은 1137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자회사 지분 매각 및 IPO 추진으로 재무 개선 가능성이 있지만 시기 예측이 어렵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SK이노베이션은 “재무건전성 확보 및 신규사업 투자재원 마련을 위한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올해 하반기 중 페루 광구 매각대금(약 1조2000억원 유입 전망), 유가 하락에 따른 운전자본 축소 등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실적 부진과 정유 및 배터리 사업 투자(3조~4조원)가 예정돼 중기적으로 재무구조 저하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부정적' 전망을 받은 정유업체인 에쓰오일도 상반기 1조2000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신평사들은 사업변동성에 대한 영업 및 재무적 대응력, RUC/ODC(복합석유화학 시설)설비 가동률과 투자성과, 석유화학시설 투자여부 등을 향후 모니터링 할 방침이다.

      에쓰오일은 2017년 이후 RUC/ODC 투자(총 4조8000억원)와 더불어 배당규모가 증가하면서 재무부담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회사의 연결기준 순차입금 규모는 2016년말 5083억원에서 2020년 3월말 7조 1497억원(리스부채 3202억원 포함)으로 증가했다. 2019년말 기준 순차입금/EBITDA는 5.9배에 달한다. 다만 내년에는 이익창출력이 소폭 회복될 것으로 보여 중기적으로는 3.5~4배 수준에 머물 것이란 예상이다. NICE신용평가는 에쓰오일의 하향조정 검토 요인으로 ‘순차입금/EBITDA가 3배를 지속적으로 초과할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사업 다각화에 투자를 늘리면서 재무 부담이 늘어나고 있지만 중장기적인 사업성을 봤을 때 불가피한 방향”이라며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배터리 부문 관련 LG화학과 진행 중인 소송도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향후 배상금 지급이나 사업에 미칠 영향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