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 아니면 급락…해외 신사업 투자에 '롤러코스터' 타는 대기업들
입력 2020.09.23 07:00|수정 2020.09.24 16:04
    주가 올리던 니콜라·나녹스, 사기극 의혹에 급락
    지분투자한 한화와 SK, 투자 평가 '롤러코스터'
    주식시장 변동성 커지며 성장주 중심 타격입어
    해외 신사업 지분투자 나선 대기업들 투자 리스크
    • 해외 벤처기업 인수에 나섰던 대기업들이 투자 성패를 두고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혁신기업'에 투자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다가도 혹평이라도 제기되면 이상 급락세를 보이는 식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변수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다보니 해외 신사업 지분투자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기업들도 변동성 리스크에 노출됐다.

      한화그룹과 SK그룹의 투자 성패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제2의 테슬라'로 불리며 기대감을 키웠던 미국의 수소차 업체 니콜라는 지난 6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직후 주가가 급등세를 보였다. 지분 6.13%를 확보한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수혜를 보며 하룻밤 새 1조원의 평가이익을 올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이 직접 투자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김 부사장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고 관련 계열사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최고의 투자'가 '최악의 투자'가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장 3개월만에 한 리서치 업체가 니콜라의 기술력을 의심, 사기극 의혹을 제기했다. 주가는 폭락했고 니콜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트레버 밀턴은 사임했다. 이 사태가 증시 하락 트리거가 될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 조사 결과가 초미의 관심사다.

      유망 스타트업의 혁신성에 대한 '사기극' 제보는 계속됐다. 이스라엘 디지털 엑스레이 기업 나녹스는 SK텔레콤이 지분 5.8%를 투자해 주목 받았다. 혁신기업이라 일컬어지며 11일 상장 직후 주가가 올랐고 한 달도 안 돼 상장가(18달러) 대비 257%까지 올랐다.

      '박정호 사장의 쾌거'란 호평을 받으며 한화의 니콜라 사례와 비교 언급됐지만 하루 만에 평가가 뒤집혔다. 니콜라처럼 "주식 사기에 불과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틀새 주가가 41%까지 떨어졌다. 베트남 에스폰, 미국 힐리오, 중국 차이나유니콤 등 그간 해외 투자 성과가 미비했던 SK텔레콤으로선 일주일 만에 사라진 '투자의 귀재' 호칭이 아쉽고 무색하다.

      투자 성패를 두고 손바닥 뒤집듯 대박과 쪽박을 오가는 모습이 잇따라 연출되고 있다. 자사 사업과의 시너지를 노리고 전략적 투자를 감행한 이들 기업은 차익 실현과 함께 '혁신기업'이란 이미지까지 노렸지만 혹평 하나로 상황이 급변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울 법하다.

    • 니콜라 투자 사례가 주목받을 당시만 해도 한화의 대박은 기업들 사이에서 큰 반향이 있었다. 해외 벤처투자 자극을 받은 젊은 오너들 사이에서 해외 벤처투자 자문 수요도 급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사업에 투자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위성통신 안테나, 항체신약 업종 중심으로 투심이 모였다.

      경기가 둔화되는 시점엔 특히 희소성이 부각되며 성장주가 프리미엄을 받곤 한다. 기술주 조정에 따른 폭락세 영향도 있지만 저금리 기조로 투자자가 주식시장으로 몰렸고 확대된 변동성이 이 같은 기현상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의혹 제기 보고서 하나가 미치는 파급이 과도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한편으론 경제 현실과 괴리가 있던 성장·기술주들이 과도했던 밸류에이션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는 거란 의견도 있다. 그간 해외 신사업 투자에 드라이브를 걸며 투자한 기업이 상장 후 대박나기만을 기다렸을 다른 대기업들도 불확실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최근 몇 년간은 현대자동차(옵시스), SK C&C(아크릴), SK㈜(에비드넷·허밍머드 바이오 사이언스), ㈜LG(암웰), 한화시스템(페이저솔루션)의 해외 투자가 두드러졌다.

    • 기업들의 투자 의사 결정 과정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졸속 투자에 대한 우려다. 통상 기업들은 투자 검토 시점부터 딜 클로징까지 1년여의 시간을 갖고 장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엔 불과 3개월여 만에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도 왕왕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기업의 투자 담당자는 "대기업들의 해외 지분투자는 자사 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전략적 제휴 차원도 있지만 신사업 시장 선점을 위해 급하게 투자를 서둘러 꼼꼼히 따져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니콜라와 나녹스 사례를 계기로 해외투자 의사결정에 대한 기업들의 고민도 본격화할 것"이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