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하겠다"는 테슬라…불확실성 더 커진 韓 배터리 업체
입력 2020.09.23 11:52|수정 2020.09.23 14:26
    LG화학 협력에도…2030년 '3TWh' 예고
    발표 직후 배터리 3사·현대차 주가 급락
    셀 제조까지 내재화…국내 업체 영향 불가피
    실현 가능성 둔 갑론을박 심화할 전망
    • 국내 전기차·2차전지 산업의 최대 불확실성으로 꼽힌 테슬라의 배터리데이가 마무리됐다. 행사 내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지향점은 "테슬라가 전부 다 하겠다"로 귀결된다. 제시된 로드맵의 실현가능성 등 분석이 뒤따르겠지만 당장은 국내 업체에 악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22일(현지시각) 테슬라 배터리데이 내용을 요약하면 2차전지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고 공급부족에 대비해 2030년까지 3TWh(1TWh=1000GWh) 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LG화학 등 협력사로부터 배터리를 구매하더라도 2022년부터는 공급이 부족해 직접 생산하겠다는 의미다. 행사 말미에는 한 달 내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개장 직후 LG화학 주가는 전일 대비 5% 이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LG화학은 국내 유일 테슬라 공급사다. 경쟁업체인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역시 각각 5%, 4% 안팎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려하는 현대자동차의 주가 역시 5% 가까이 급락했다. 드러난 내용만 놓고 보자면 국내 업체에 악재가 될 것이란 판단이 우세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이후 하락폭을 좁히긴 했다.

      배터리데이에서 파격적인 내용이 없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전고체 배터리 관련 계획이나 100만마일 배터리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미래구상으로 가득했던 데 대해 투자자들은 실망했다. 기존 원통형 2170에서 대형화한 원통형 4680으로 도약해 생산에 돌입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인상적이진 못했다는 분위기다. 전날 "LG화학, 파나소닉, CATL 배터리 구매를 늘릴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트윗 반응이 더 뜨거웠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전기차와 2차전지 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은 예상보다 클 전망이다. 결국 자체생산을 포함해 전기차 밸류체인 전반을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테슬라는 2022년까지 100GWh 규모 생산목표를 세웠다. 현재 글로벌 기준 1위인 LG화학의 생산능력이 100GWh다. LG화학과 삼성SDI·SK이노베이션 3사의 2022년 예상 생산설비 규모가 320GWh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2차전지 시장 최대 큰손인 테슬라와의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하다. LG화학으로부터의 배터리 구매는 지속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안심하기 어렵다. 테슬라는 지금까지 타 업체와의 협업에서 시작해 기술을 내재화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당초 2차전지 업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자체 생산에 대한 우려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통상 설비 1GWh당 700억원 수준 비용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TWh 단위 설비에만 수백조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가팩토리 수십 곳을 새로 지어야 하는 만큼 투입재원을 두고 투자자들의 설득하기도 어렵고 양산에 성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배터리데이를 통해 테슬라는 셀 디자인부터 양·음극재 개선 및 패키징까지 5단계에 걸쳐 투자비용을 70% 가까이 절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맥스웰 인수를 통해 확보한 건식 공정을 통해 기존 기가팩토리 라인 대비 생산성을 7배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kwh당 배터리 가격은 기존 대비 56%까지 절감하게 된다. 내연기관 퇴출 시계는 더 급박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전기차가 내연기관 대비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기준은 통상적으로 kwh당 배터리가격 100달러로 꼽혀왔다. 현재 판매되는 전기차 전반 kwh당 공급가가 120달러에서 130달러선이다. 이르면 내년 안에 테슬라가 시중에서 가장 싼 전기차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테슬라의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국내 업체들에 미칠 영향은 부정적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움직이면 전기차를 낼 계획을 하고 있는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가격을 떨어뜨릴려고 할 것"이라며 "배터리 업체들은 배터리 수요가 많아진다고 하더라도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은 박할 수밖에 없어 수익성 문제가 불거질 여지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LG화학의 배터리법인 분할,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리막(LiBS) 자회사인 SK아이테크놀로지의 3000억원 규모의 프리IPO 등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국내 업체들이 잇따라 투자금 확보에 나서거나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몇년 후에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 자동차 업계에 한정해선 불확실성은 한층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분간 관련 업계에선 테슬라의 로드맵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갑론을박이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주가가 최고점에 달했을 때 유상증자를 발표한 만큼 투자계획에 필요한 재원은 마련했을 거란 분석이 많다. 매출성장 속도나 누적되는 이연매출까지 고려하면 영업현금흐름은 지속적으로 좋아질 거란 평가도 나온다. 배터리데이에서 밝힌 미래구상과는 별개로 기존 사업 목표인 연간 50만대 판매목표도 순항 중이다.

      그러나 기존에 주목을 받았던 로드스터와 세미·사이버트럭의 양산 시점이 늦춰지는 것처럼 이날 밝힌 공약을 온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 테슬라는 과거에도 주문계약에 맟춰 전기차를 생산하지 못해 시장의 신뢰를 잃은 전례가 있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기가팩토리 초기에도 약속한 시점에 전기차를 만들어내지 못해 주가가 급락한 적이 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산에 성공해 패러다임을 바꿔버렸다는 점이 테슬라의 저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