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에 대기업 오너 경영권 방어 비상
입력 2020.12.14 07:00|수정 2020.12.15 10:22
    공정법 전면 개정…공익법인 의결권 제한돼
    재벌들 승계 우회로로 공익법인 활용해 와
    대기업일수록 공익법인 지분 적지만 타격 커
    의결권 유지 방안 고심…”사회 공헌 줄어들 것”
    •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기업 오너들은 공익법인에 핵심 계열사 지분을 넘겨 세제 혜택과 지배력 유지 효과를 거둬왔으나 앞으로는 공익법인의 의결권이 제한된다. 공익법인을 활용한 우회 승계는 물론 지금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도 비상이 걸렸다. 2년의 유예기간 동안 다시 지분을 되찾거나, 대신 맡아줄 우군을 찾아야 하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일 정부가 추진한 ‘경제 3법’이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감사위원을 뽑는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각각 3%까지 제한(상법 개정)하고, 삼성·현대자동차 등 복합금융그룹 6곳의 감시를 강화(금융그룹감독법 제정)하기로 했다. 공정거래법은 제정 후 40년 만에 전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재계에선 경제 3법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반발이 많았다. 대기업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지키는 것도 어려워졌다. 현행법에선 공익법인 소유 주식의 의결권에 대해 제한이 없다. 그러나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동일인(총수)의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공익법인은 동일인이 지배하는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계열사 임원 임면이나 정관 변경, 합병이나 영업양도 등에 한해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 의결권이 허용된다.

    • 공익법인은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으로 주무관청의 허가를 얻어 설립한다. 공익사업은 학술·자선·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대기업집단은 이런 공익법인을 설립해 사회 공헌 사업을 하고 있으나,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나, 경영권 우회 승계 등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 대비, 효과는 기대보다 크지 않았다. 정부 당국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꺼내든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자산 중 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6.2%였으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6%에 그쳤다. 배당 수익이 크지 않으니 자산을 활용한 공익사업도 활발히 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2016년의 경우 공익법인은 총 수입의 93.5%를 비용으로 지출하기도 했다. 공익법인에 있어 공익사업은 ‘부수적’인 업무였던 셈이다.

      대기업 집단이 공익법인을 활용하게 된 것은 결국 지배력 유지 때문이다. 공익법인은 사인(私人)인 오너 일가와 달리 지분 승계 문제가 없다. 일단 공익법인에 지분을 넘기면 일정 지분율까지는 그 자체로 절세 효과가 있다. 오너 입장에선 지분율을 지키기 위해 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고, 세대를 넘어갈 일도 없으니 그에 따른 세금 부담도 없다.

      대기업 공익법인이 주식을 가진 계열사는 총수 후계자의 지분이 높은 곳, 혹은 승계 구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 곳들이 주를 이뤘다. 공익법인 이사장 역시 오너 일가 혹은 그와 친밀도가 높은, 즉 오너 일가의 이해관계와 보조를 맞출 인사들이 많았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복지재단, 삼성문화재단 등 주요 공익법인들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이재용 부회장 승계 구도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 외 다른 대기업 집단 소속 공익법인들도 지배구조 정점인 지주사나 중요 계열사의 주주인 경우가 많았다. 한진그룹의 경우 산업은행의 지원으로 경영권 분쟁의 위기를 한숨 돌렸으나, 그 전까진 소액주주인 재단의 존재감이 적지 않았다.

      이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법의 맹점을 이용하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공익법인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던 대기업 집단들도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치밀한 계산 아래 지배구조를 다져온 재계 상위권 기업일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만 해도 이건희 회장 타계 후 공익법인이 주요 계열사 지분을 받아오는 것 아니냔 예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은 재단이 없는 곳이 없는데 재단 의결권을 제한하면서 비상이 걸렸다”며 “큰 기업일수록 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은 낮지만 경영권에 미칠 영향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이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2년의 유예기간이 있고, 그 후 3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의결권 행사 비율을 낮춰나가게 된다. 그렇더라도 대기업 입장에선 조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거래법이 변수 없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대기업들은 의결권을 유지하기 위해 공익법인 지분을 되사오거나, 혹은 뜻을 같이할 우군을 모셔와야 하는데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단법인인 경우 재단의 정관변경, 즉 핵심 자산인 주식의 처분 자체가 쉽지 않다. 주식 처분은 재단의 존재 의미를 해할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이뤄져야 하고, 주무관청의 허가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처분이 가능하더라도 주식을 오너 일가 혹은 핵심 계열사가 사와야 하는데 그 때는 인수자금이나 세금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당장 자금이 없다면 다른 기업이나 사모펀드(PEF) 등 우군을 모셔와야 한다. 다만 그룹 밖의 존재들과 얼마나 뜻을 공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벌들이 공익법인을 탈법적 승계의 도구로 활용한 면은 있다. 그러나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공익법인의 순기능까지 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수적이나마 발현되던 공익적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M&A 자문사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법에서 금지한 것만 피하는 방식으로 공익법인을 승계에 활용한 원죄는 있다”면서도 “법에서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역설적이게도 공익법인을 만들어 사회공헌하는 사례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