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4개월만에 '텐 배거' 등장...광적인 유동성에 희비 갈린 투자자들
입력 2021.01.13 07:00|수정 2021.01.15 10:07
    코스닥지수 1000 목전‧‧‧박셀바이오 텐베거 등 이상현상 낳아
    초기 VC들도 희비 교차, 불과 1~2개월 차이로 수익률 큰 폭 차이
    • 유동성과 탐욕이 넘치는 시장의 광기(狂氣)가 상장 4개월만에 텐 배거(Ten bagger; 10루타, 가격이 10배 오른 주식)에 오르는 주식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9월 상장한 박셀바이오가 주인공이다. 코스닥에 초기 투자에 참여한 벤처캐피탈(VC)들은 불과 1~2개월의 차이로 희비가 완전히 엇갈렸고, 상장 주관사는 의무인수분으로만 150억원의 평가 차익을 내게 됐다.

      2017년 텐배거를 기록한  신라젠이 중소 바이오 주식들의 대장 역할을 하며 '바스켓 상승'을 이끌었듯,  최근 중소형 바이오주의 주가 역시 박셀바이오가 리드하고 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신라젠 열풍의 끝이 거래정지였다는 점을 상기하며 극단적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1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종목은 단연 박셀바이오다. 지난해 9월 공모가 3만원(100% 무상증자 후 기준가 1만5000원)에 상장한 박셀바이오는 지난 7일 장중 한 때 29만9500원까지 오르며 공모가 대비 150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6일 거래정지 뒤 7일 장중엔 10% 이상 하락했다가 결국 3.5% 상승 마감했고, 8일엔 다시 10% 이상 하락하며 전형적인 테마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셀바이오가 코스닥의 화두가 된 건 광기 넘치는 유동성에 '암 정복'이라는 한국 바이오 특유의 테마가 얹혀진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박셀바이오는 2010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및 임상 백신 연구개발사업단에서 분사된 항암 면역치료제 전문 바이오기업이다. 국내 면역학 분야 전문가인 이준행 대표와 혈액암 전문가 이제중 최고의료책임자 등을 주축으로 한다. 자연살해(NK) 세포와 수지상세포(DC)를 활용한 항암 면역치료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박셀바이오는 상장 공모 당시 흥행에 완전히 실패했다. 당시 박셀바이오는 공모가를 3만~3만5000원으로 정했지만 수요예측 경쟁률이 94.18대1에 그치며 공모가를 희망범위 하단인 3만원으로 정했다. 상장 직후부터 10월 중순까지는 계속해서 공모가를 밑돌았다.

      그러다 한양증권, IBK투자증권 등 증권가에서 박셀바이오 리포트를 내놓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증권가에서는 박셀바이오가 가진 간암치료제 ‘VAX-NK’의 임상 1상과 2상 결과에 주목했다. 임상 2상에서 완전 관해, 즉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는 첫 사례가 나왔다는 얘기가 돌며 박셀바이오 주가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스닥지수가 작년 11월 800선에서 현재 1000선을 바라보는 등 긍정적인 장세가 뒷받침되자 박셀바이오 주가에 말 그대로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LB인베스트먼트, 아주IB투자, 하나금융투자, 현대기술투자,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등 초기부터 박셀바이오에 자금을 댔던 벤처캐피탈(VC)들도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두고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대개 VC는 상장과 동시에 투자 수익률을 실현하지만, 일부 지분을 들고 있던 아주IB투자나 하나금융투자 등 주관사들은 박셀바이오 주가 급등에 따라 눈부신 수익률을 기록하게 됐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박셀바이오는 이제중, 이준행 등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제외하고 아주IB투자(아주좋은벤처펀드), LB인베스트먼트(LB유망벤처펀드) 등이 각각 4.50%, 2.79%의 지분을 쥐고 있었다. 주관사인 하나금융투자 역시 상장 당시 의무 보유분으로 0.4%가량의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현대기술투자,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서울투자파트너스 등이 초기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현대기술투자나 LB인베스트먼트,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등은 주가가 오르기 전 일부 또는 대부분의 지분을 매각해 수익 실현을 했고, 아주IB투자는 11월 일부 투자금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상승세가 이뤄지기 전 수익 실현을 해서 이번 텐 배거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3개월이라는 의무 보유 기간에 묶인 하나금융투자는 온전히 주가 급등의 혜택을 보게 됐다. 하나금융투자는 약 8억8000만원을 들여 의무 보유분을 인수했는데, 이 지분의 가치가 7일 종가 기준 159억원에 달한다. 평가차익만 15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의무보유기한이 지난해 말 끝났지만, 하나금융투자는 아직 해당 지분 처분 여부와 처분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상장 후 4개월만에 신규 상장주가 텐 배거가 되는 건 2000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 2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신라젠조차 상장에서 텐 배거까지 11개월이 걸렸다. 15배라는 기록적인 주가 상승률은 2000년 닷컴버블 당시 한글과컴퓨터(6개월간 18배)와 비슷한 수준의 주가 상승률이다.

      투자금융(IB) 업계에서는 한 목소리로 이런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주관사 입장에서는 상장 시점 및 가격 산정(밸류에이션) 전략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안 그래도 투기적 수요가 집중되고 있는 공모주 시장에 더욱 투기 수요가 몰릴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이후 코스닥 신규 상장공모 기업들은 예외 없이 청약경쟁률이 1000대 1을 뛰어넘고 있고, 바이오 업종의 경우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벌써 300%에 이르는 종목도 나타나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임상 2상도 아닌, 1상 결과만으로 주가가 15배 폭등한다는 건 유동성과 투기적 수요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며 "새롬기술부터 신라젠까지 광적인 공모주 투기의 끝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