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 狂風...'하이퍼 인플레이션' 되나 커지는 우려
입력 2021.01.21 07:00|수정 2021.01.22 08:57
    부동산에 이어 주식· 비트코인까지
    생활 물가도 치솟을 가능성
    "인플레이션이 양극화 심화시킬 것"
    정부, 쓸 카드 많지 않아 고심
    • 인플레이션 논쟁이 연초부터 뜨겁다. 미국 금융가를 중심으로 '겪어보지 못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부동산 및 주식시장 과열 등 자산시장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아직 인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인플레이션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최근 미국 금융가의 가장 큰 화두는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일부 인플레이션 지표가 급등하고, 월가의 비안코리서치 설립자인 짐 비안코 등 전문가들이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고 잇따라 경고에 나서면서 경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안코가 경고한 바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수준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보다 0.5%포인트 높은 수준을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수치는 지난 28년 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의 인플레 수준이다.

      아직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는 우려할 상황이 아니며 그간의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조를 계속해서 내비치고 있지만, 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했을 때에도 현재와 같은 목소리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미 일부 자금은 연말 중 연준이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테이퍼링(Tapering; 유동성 회수)에 들어갈 것을 전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미국의 여러 지표에선 인플레이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나타내는 미 국채 10년물과 상대 수익률도 2019년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수준인 2%에 근접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주식시장 과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동학개미운동’이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이란 신조어가 미디어를 뒤덮고 있다. 일부에선 단순한 '투기'로 현재 상황을 묘사하지만, 이미 자산을 중심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견해들이 많다.

    • 당장 부동산 시장에 몰린 돈이 사상 처음으로 22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의 ‘2020년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부동산금융은 2214조9000억원으로 2019년말 2067조원보다 7.1% 늘었다. 부동산시장으로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은 부동산 시장이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20·30대마저도 ‘영끌’을 통해서 부동산 시장 막차를 타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쏠리는 이유로 분석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화폐가치 하락이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같이 궤를 한다는 설명이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펀드매니저들은 일부 종목을 중심으로 사실상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가 한정된 상황에서 공급은 제한적이지만, 특정 종목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주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와 다른 것은 개인이 이런 장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1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개인은 4조4838억원치를 순매수했다. 종전 1위 기록인 2조2206억원을 무려 2배 이상 추월하며 일간 최대 순매수 기록을 새로 썼다. 이날 한때 코스피는 3200선까지 넘어서기도 했다.

    • 자산운용사들 사이에선 이런 현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저평가 가치주 투자를 ‘바이블’이라고 믿는 40대 이상의 펀드매니저들은 현재의 현상을 '지나친 과열이다'라고 분석한다. 반면 20~30대 젊은 펀드매니저들은 과거의 저성장 가치주란 투자 방식은 이미 ‘올드스쿨’이라며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젊은 펀드매니저들은 가치주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며 성장주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수요가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한다. 1등 회사가 모든 시장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이 현재의 경제 생태계의 큰 흐름이란 점에서 이들 회사의 주가를 그간의 밸류에이션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즉 1등 회사 주식이란 한정된 재화에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주가에 ‘인플레이션’이 유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자산 인플레이션이 생활 물가까지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가 4개월 연속 0%대 저물가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농산물 가격 데이터 전문기업인 팜에어가 주요 농산물 가격 추이를 분석한 결과 주요 농산물 10개 품목의 10 kg당 평균가격이 전월 대비 최대 5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재료들의 가격이 오르면서 가공식품의 가격도 오르고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그간 묶여 있던 수요가 폭발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통계청 자료에 대해선 코로나로 인해 바뀐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물가 바스켓’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산인플레이션처럼 아직 당장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실생활 물가도 큰 폭의 상승을 목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양극화 심화’라고 입을 모은다. 통화가치 하락 속에서 자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없다는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자산을 취득할 수 있는 계층이 한정적이란 점에서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란 설명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란 점이다. 자산가격, 소비자물가 상승 등이 나타나더라도 과연 금리를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미 풀어 놓은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선 금리를 높여야 하지만, 이 경우 경제 취약층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섣부른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경우 오히려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 상승기에 규제가 오히려 부동산 값 상승의 기름을 부은 사례가 주식시장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

      한 펀드매니저는 “동학개미 운동이라고 하지만 이런 주식 광풍에도 소외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라며 “자산 인플레이션에 이어 실제 생활물가까지 오르게 되면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점에서 정부가 현 상황을 막기 위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다”라며 “부동산, 주식시장 규제 보다는 궁극적으로 양극화 해소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