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수소경제...정부 그린뉴딜이 '신기루' 만든다
입력 2021.01.22 07:00|수정 2021.01.25 10:03
    그린 ETF 자금 유입액 폭증
    수소경제 초기임에도 투자 과열
    정부 로드맵에 기대감만 부풀어
    • 정부가 내놓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라 기업들이 수소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현장에선 정부 지원책이 되레 옥석 가리기에 방해가 될 거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 지원에 대한 시장 기대감에 그린뉴딜 수혜주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어서다. 심지어 친환경과 거리가 먼 '부생수소' 생산 확대를 목표로 내건 기업마저 '그린뉴딜' 수혜주라며 주가가 오르고 있는 판국이다. 자칫 수소경제 전체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2019년 정부가 내놓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2040년 국내 수소차 누적 보급 290만대 ▲수소충전소 1200개소 구축 등이 주요 내용이다. 2020년에는 수소경제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켜 수소 전문 기업을 2030년까지 500개 육성하고 4대 권역별 중규모 수소 생산기지를 설치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그린뉴딜 사업에 총 73조4000억원을 투입하고 이 중 42조7000억원이 국가 부담액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국내 그린수소 생산 계획은 아직 실증 단계다. 로드맵을 따라 진행하는 데 불확실성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린뉴딜 자금 집행계획과 관련 투자상품 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 일찌감치 수혜주로 떠오른 종목들은 수익 시점이 불투명함에도 기업가치가 크게 뛰고 있다. 작년을 기점으로 그린에너지 관련 기업을 편입한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액은 폭증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 주도 로드맵에 연계해 관련 투자상품을 출시한다고 하더라도 10년 가까이 적자폭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이야기다. 정부 재정 투입이 보장된 2025년까지는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별하기 힘든 깜깜이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세부적으로 살피면, 수소생산을 늘리겠다고 한 포스코, 현대제철의 경우 화석연료를 활용해 추출한 수소인 '부생수소' 생산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물론 수소생산이 통상 그레이수소(부생수소, 추출수소)에서 블루수소, 그린수소 순서로 진전된다는 점에서 그레이수소가 단기적으로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부생수소는 탄소배출 '0'을 지향하는 그린뉴딜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물론 그레이수소를 발판으로 그린수소까지 나아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생수소 생산 확대 계획이 '그린'과 거리가 멀다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현재로선 부생수소는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밸류가 일찍 반영된 듯 하며 일종의 수소 신기루가 생긴 모습"이라고 말했다.

      보조금 지급 관련 업계의 동상이몽도 주목거리다. 수소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선 기술 확보가 가능할 만큼의 자금력을 보유한 대형 그룹이 사업초기부터 전후방 사업을 총괄할 구심점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스페이스X와 스타링크, 테슬라를 연계해 화성 이주 계획이란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현대차그룹이 해당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수소 생산 기술을 확보 중인 SK그룹, 한화그룹 등도 후보군에 꼽힌다. SK그룹은 지난 7일 계열사 SK E&S와 함께 미국 수소 기업인 플러그파워(Plus Power Inc.) 지분 9.9%를 15억달러(한화 약 1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플러그파워는 차량용 연료전지, 전해조, 수소충전소 건설 기술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솔루션도 미국 스타트업 '시마론'에 1억달러(한화 약 1000억원)를 투자해 수소 운송과 저장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보조금이 뒷받침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울산에 비해 서울은 운송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세팅해야 한다"라며 "운송비 등을 감안하면 정부 보조금이 필수"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계획된 국가 보조금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라며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가능케 해주면 단가가 하락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겉모습만 그럴듯한 수소기업을 양산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