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교보생명 풋옵션 관련 회계사 기소에 회계법인들 ‘멘붕’
입력 2021.01.22 07:00|수정 2021.01.26 10:36
    검찰, 회계사 및 재무적 투자자 임원 기소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공모 혐의
    회계법인들 검찰 기소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
    부정한 청탁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단 의견
    법원의 판결에 따라서 그간의 비지니스 모델에 영향 클 듯
    • 검찰이 교보생명의 주식가치를 부풀려 평가했다는 이유로 딜로이트안진 회계사들을 기소했다.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는 혐의인데 회계법인 및 로펌에선 업무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상의 절차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부정청탁 등 기소의 내용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어서 해당 내용을 놓고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기소만으로도 해당 회계사뿐만 아니라 회계법인의 자문 업무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FI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도 이번 건에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 19일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부풀려 평가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과 어피너티컨소시엄(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IMM PE·베어링 PE) 임원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용역을 수행해 풋옵션 행사가격을 부풀렸을 수 있다는 등의 혐의다.

      기소 소식이 전해지자 회계법인들은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 기소의견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FI들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문제 삼은 것은 교보생명 풋옵션 가치를 놓고 회계사와 FI 임원간의 '부적절한 공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풋옵션 가치가 놓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산정 과정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이에 대해서 회계법인들은 해당 사안이 공인회계사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부터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우선 풋옵션 가격산정이 외부의 투자자나 채권자 등을 대상으로 공시하기 위함이 아닌데다, 풋옵션을 놓고 다툼이 있는 양자간의 참고 자료라는 점에서 검찰의 기소의견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검찰이 문제삼은 공모혐의가 인정이 되기 위해선 감사보고서 등 투자자, 채권자 등에 공시하기 위한 서류를 의도적으로 조작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통상 풋옵션 가격 산정에 대한 다툼이 있을 경우 통상 양 당사자가 회계법인을 선정해 가격산정을 의뢰한다.

      이 경우 회계법인들은 고객과 논의를 통해서 통용되는 방식을 통해서 가격을 산정해낸다. 가격산정이란 것이 법으로 정해진 룰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 가격을 산출할지 고객과 협의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회계법인이 가격산정을 하더라도 일방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풋옵션 가격에 대해 양 당사자가 각각 평가기관을 선임해 평가액을 교환하고, 평가액의 차이가 10% 이하일 경우엔 그 평균가격을, 10% 초과시에는 제3의 감정기관의 평가액을 풋옵션 행사가격으로 정한다. 이번의 경우 FI는 딜로이트안진을 선정해 평가금액을 제시한데 반해 신창재 회장 측에선 어떠한 평가기관의 의견을 의뢰하지는 않았다. 즉, 일방이 높은 평가금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평가금액이 확정금액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비단 풋옵션 가격 산정뿐만 아니라 M&A 거래에서도 기업가치 산정은 늘 이뤄지는 업무다. 기업을 파는 입장과 사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가격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양측은 각각 평가기관을 선정해 기업가치 산정 작업을 한다. 당연히 평가과정에서 의뢰한 고객의 의견이 들어 갈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협의를 거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이다. 가격산정이란 것이 방법론은 있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법도가 있진 않아서다.

      검찰이 문제 삼은 부정청탁 부분도 아직까진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검찰은 회계사가 수수료 이외에 FI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고, 이들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을 놓고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보니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한 기업가치 산정 전문가는 “이런 건에선 가격 산정방식 등에 대해서 고객과 논의한다는 점에서 민사의 영역이 아닌 형사처벌로서 다룬다는 것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라며 “다만 부정청탁 등을 검찰이 문제 삼았는데 해당 내용에 대해서 아직까지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라고 말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회계법인들의 업무는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감사업무와 자문업무가 분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문업무에 까지 감사업무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업무의 특성상 고객과 협의할 일이 많은데 해당 사항에 대해서도 감사업무 수준의 독립성을 요구한다면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극히 제한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은 이번 기회가 그간의 회계법인들의 잘못된 관행을 고칠 기회라는 입장이다.

      교보생명은 “이번에 주식에 대한 가치평가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소속 공인회계사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경우 주식 가치평가에 있어 의뢰인과의 독립성을 철저히 준수하지 않던 일부 회계법인의 그간 관행에도 제동이 걸리게 될 뿐 아니라, 향후 회계법인의 경우 기준 확립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산정을 비롯해 이번 건까지 기업가치 산정에 대해서 검찰이 제동을 걸면서 회계법인이 해당 업무 수행을 해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차라리 정부에서 해당 기관을 만드는 것이 공정성 시비를 없앨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우면 소송비용 등을 감안해 가치산정 수수료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미국에서는 가치산정 평가 보고서 작성 만으로도 자문 업무 못지 않은 수수료가 부과되고 있으며, 이를 리그테이블에도 반영한다.

      FI들도 중재재판 판결을 앞두고 생각지도 못한 암초를 만났다. 3월에는 풋옵션 행사에 대한 중재재판 결과에 윤곽이 나오는 상황에서 풋옵션 가격을 놓고 법정에서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해당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면 3년여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FI들의 자금회수도 늦어질 수 있다. 신 회장 측에서 검찰이 기소까지 한만큼 해당 이슈가 해결되기 까지 FI와의 협상을 미룰 가능성이 크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재판 때문에 사모펀드들의 자금회수가 늦어진다면 이는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등 출자자들의 손해로 이어진다”라며 “문제가 있다면 잘못을 가려야 하겠지만, 시간 끌기 식 소송 남발은 기업이나 투자자들 모두에게 손해로 돌아간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