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분쟁 장기화에…SK이노베이션 돈 대려던 금융사도 난색
입력 2021.03.25 07:00|수정 2021.03.26 09:56
    미국·유럽·중국 등 배터리 사업확장 계획
    금융 지원도 필요하지만 금융사는 난색
    최악의 경우 회사 존립도 흔들리기 때문
    ‘강공 일변’ 협상 전략에 부정적인 시각도
    •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분쟁이 장기화하며 이를 지켜보는 금융사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국내외 배터리 사업을 키우려면 금융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까진 LG화학이 완승한 터라 금융사 입장에선 위험 부담을 지고 자금을 투입하기 난처한 상황이다.

      지난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준 후에도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고 힘싸움이 더 격화하고 있다.

      좀처럼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두 회사 모두 배터리 신규 투자를 적극 집행하기 조심스러울 상황이다. 특히 수세인 SK이노베이션이 더 부담스럽다. 회사는 2023년까지 배터리 생산 능력을 두 배 이상 키울 계획이다. 2018년 이후 배터리 및 소재 사업에 총 7조6957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까지 4조7822억원이 쓰였다. 기존 계획만 달성하려 해도 3조원의 자금이 더 필요한 셈이다.

    • SK이노베이션은 작년 2조568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일시적인 업황 부진 영향도 있었지만 자체 재무여력만으로 대규모 투자금을 대기 녹록지 않다. 국내에선 투자 심리가 나쁘지 않았다. 작년 4000억원에 이어, 올해 초 5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과거 수출입은행에서 3000억원의 장기차입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해외에 투입할 외화 자금도 중요하다. SK이노베이션은 신한은행 등과 5억달러 규모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헝가리 자회사에 대해선 산업은행과 하나은행이 외화 지급보증을 하고 있다. 회사가 힘을 쏟으려는 지역은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이다. 통상 기업이 해외 설비를 확장할 때는 외화자금이 많은 국책은행이나 시중은행 등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 SK넥실리스(전 KCFT)의 말레이시아 공장 자금도 산업은행이 지원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SK이노베이션은 설비 투자금 등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사들과 꾸준히 협의를 해왔다. 설비 투자 계획은 장기적으로 세우다보니 이미 자금 지원 조율을 마친 경우도 있는데, 일부 금융사는 신규 지원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법적 분쟁 중이라 돈 떼일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합의 협상도 진행하고 있지만 서로 생각하는 합의금 격차가 조 단위다 보니 의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바이든이 거부권도 행사하지 않는다면 SK이노베이션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 두 회사는 서로 맹공을 퍼부으며 갈등의 골도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태다. 법적 다툼이 미국에서 유럽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SK이노베이션의 유럽 투자금을 지원하기도 부담스럽다.

      SK이노베이션은 ITC 소송에서 문서 삭제로 인해 영업비밀 침해 여부는 다투지도 못한 채 수입금지 조치를 받았다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10일 확대 감사위원회를 개최한 뒤엔 “미국의 배터리 사업을 지속할 의미가 없거나 사업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 조건은 수용 불가능할 것”이란 의견을 냈다. 벼랑끝 대치를 이어가겠다는 것인데 배터리 산업의 명운을 걸기엔 위험한 것 아니냔 평가도 나온다.

      한 금융사 임원은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잘못하면 SK이노베이션의 존립까지 위협받을 상황이기 때문에 계획해 둔 자금 지원도 실행하기 쉽지 않다”며 “결국 인력과 기술을 빼온 것으로 봐야 하는데 합의 대신 강경책을 펴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