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인력 수혈하는 벤처기업들…주니어 뱅커들은 이탈 고심
입력 2021.04.02 07:00|수정 2021.04.05 11:24
    상장 앞둔 기업들, 증권사 IPO 인력 적극 수혈
    최근 신금투 저연차 뱅커, 벤처사로 이직 사례
    'IB 필요 없다'는 기업들 움직임에 유명무실해진 IB
    • 벤처기업들이 증권사 투자은행(IB)부서 저연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폭적인 영입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자체 IB조직 내재화를 통해 직접 거래를 성사시키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관련업무 경력이 있으면서 비교적 몸값 부담은 적은 IB 주니어들이 주된 영입 대상이 됐다.

      최근 투자업계 내에선 증권사 IB조직 저연차 뱅커들의 스타트업행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커리어에 고민이 많은 주니어 연차의 IB 이탈은 꾸준히 있었지만 기업들의 IB 내재화 트렌드가 확산하는 만큼 그 규모는 최근 들어 부쩍 커졌다. 카카오뱅크, 야놀자, 무신사 등 비교적 업력이 짧은 비상장 벤처기업들의 영입 시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벤처기업들의 투자회수 수단이 주로 기업공개(IPO)가 되는 만큼 세세한 실무를 꿰고 있는 IPO 실무진은 특히 인기 영입 대상이다. 본격적으로 상장 준비에 나선 한화종합화학이 "함께 미국 상장 준비해보지 않겠느냐"며 IPO 실무 주니어들에게 '태핑'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최근엔 신한금융투자에서 IPO 업무를 담당하던 주니어 뱅커가 상장 준비에 한창인 벤처기업 IR조직으로 옮기며 주목 받았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들이 대형증권사 IPO, M&A 담당 인력들을 좋은 조건에 영입해가고 있다"며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이 더 부족해지면서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라 전했다.

      이들의 잇단 이탈 사례는 'IB의 유명무실화'와도 연관있다. 최근 기업들은 몇몇 조단위 딜(Deal)을 제외하곤 IB 없이 자체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만 선임하는 정도다. 네이버, 카카오, 현대중공업, 쿠팡 등이 대표적이다. 'IB, 로펌 다 끼고 격식 차릴 시간에 필요한 딜을 빠르게 진행해 정보 누수도 막자'는 식이다.

      기업들이 증권사 내 IPO·M&A·유상증자·회사채 발행 업무를 맡아 본 인력을 흡수하면서 IB 네트워크는 더이상 크게 필요하지 않게 됐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상장 계획이 있는 벤처기업들 상당 수가 IB 출신을 앉혀놨다. 실무 경험이 있는 인력을 영입한 만큼 당장 내일이라도 상장이 가능한 수준까지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고 전했다. 무신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모 증권사 일화도 회자된다. 이 증권사는 무신사에 접촉해 프리IPO 수요를 물었으나, "IB 없이 직접 진행할 것"이란 답을 들었다. 업계선 IB 입지가 예전같지 않다는 토로가 나온다.

      이에 경력 전환을 하려는 주니어들도 자연스레 늘었다. 국내 증권사는 글로벌 IB와 달리 저연차가 업무에 관여할 수 있는 재량이 비교적 한정적이란 평가를 듣는다. 빅데이터 리서치, 밸류에이션을 비롯한 대다수 업무가 정형화 돼 있고 노동시간은 긴데 돌아오는 인센티브는 마땅치 않은 점도 불만을 키웠다.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나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탈(VC) 등 투자 파트(Buy Side)로의 이직이 인기가 많다. 대부분 연봉을 보전받거나 그 이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프리IPO가 '대박'이라도 나면 성과급을 노릴 수도 있다. 큰 하우스로 이직하기 위해 해외 MBA에 진학하려는 움직임도 다수 있다.

      3년 정도 IB 업무를 배우고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일이 일반화하면서 IB가 사실상 '인재사관학교'로 전락했다는 평이 나온다. "딜 구색을 갖추는 들러리가 된 것 같다"는 토로도 종종 들려온다.

      기업행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100% 만족할 만한 선택지는 아니란 점에서 선뜻 제의를 수락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최근 한 스타트업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한 주니어 뱅커는 "아무래도 대리급에서 이직하는 것이다 보니 요직이 아닌 IR조직로 간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렇다고 그냥 이 곳에 남으려니 미래 없는 이 조직에 계속 있는 게 맞는지 싶어 고민만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과와 무관하게 동일한 성과급여를 지급하는 곳에선 차라리 여기가 더 편할 수도 있다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