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만족 못하는 발행사와 주관사...IPO 호황에 더 커진 '동상이몽'
입력 2021.04.06 07:00|수정 2021.04.05 17:48
    미국 상장 ‘신기루’에 발행사들 욕심 커져
    국내 주관사들 계약 해지 가능성에 촉각
    반면 국내 증권사 필요한 중소기업 상장은 소홀
    발행사와 주관사의 ‘미스매칭’ 심화
    • 국내 기업공개(IPO)시장에서 발행사와 주관사의 ‘동상이몽’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전 세계적인 유동성 장세로 국내 기업들이 해외 상장 ‘신기루’에 빠져들고 있다. 동시에 국내 증권사들은 하루아침에 계약 해지를 통보받을 위기에 처했다. 길게는 몇 년씩 관계를 맺어둔 것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정작 국내 증권사들의 컨설팅이 절실한 중소기업들은 소외를 받고 있다. 이들이 불만을 표출하며 주관 계약을 파기하는 일도 잦아졌다.

      대형 발행사와 주관사의 관계는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발행사의 눈높이는 머리 끝까지 올랐는데, 주관사들은 방어적으로 취하는 사례가 많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어급 상장이 줄을 잇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뒤를 이어 미국 상장을 검토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켓컬리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JP모건 등 외국계 투자은행(IB)을 선임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쿠팡의 성공적인 뉴욕 증시 상장에 힘입어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의 미국 상장 의지가 커진 것으로 전해진다.

      뒤이어 리디북스, 스마트스터디, 야놀자 등도 미국 상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으로 거론된다. 스마트스터디는 ‘핑크퐁 아기상어’로 미국 시장에서 반향을 끌고 있고, 야놀자 역시 글로벌 숙박 플랫폼을 꿈꾸며 국내 및 해외 이중 상장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삼는 국내 기업이 많아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미 주관계약을 맺어둔 국내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정도 상장 작업을 준비해왔는데, 갑자기 발행사가 해외 상장으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이는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마켓컬리는 최근 삼성증권과 맺었던 상장 주관계약을 해지했다. 2018년부터 삼성증권과 상장 작업을 벌여왔지만 최근 미국 상장으로 전략을 바꾸면서 외국계 IB들을 새 주관사로 선정했다. 스마트스터디와 야놀자 등의 주관사를 맡은 미래에셋대우 역시 안심하기는 어렵다. 국내 증권사들은 해외 상장에 필요한 라이선스가 없는 데다, 해외 직상장 경험이 없다. 만약 발행사들이 국내 상장을 추진했다가 미국 상장으로 전략을 바꾼다면 주관사 교체는 불가피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 증권사들의 도움이 절실한 중소기업들은 정작 소외받고 있다. 최근 대기업 계열사들이 줄지어 기업공개에 나서자 증권사들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중소기업 상장을 챙길 여력이 없는 탓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품은 많이 들고 리스크가 큰 중소형 발행사보다는 대형사를 선호할 유인이 크다.

      다만 양질의 서비스를 원하는 중소기업들과 대형 증권사의 니즈가 서로 맞지 않다보니, 상장 작업이 원활하지 않은 모양새다.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지금의 IPO 호황장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실제로 대형 증권사와 상장 작업을 추진했다가, 제대로 된 컨설팅을 받지 못해 계약을 해지하거나 주관사를 교체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바이오 벤처 회사 안지오랩은 최근 NH투자증권에서 대신증권으로, 마스크팩 시트 제조회사 셀바이오텍 역시 한국투자증권에서 대신증권으로 주관사를 바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오너들도 트랙 레코드(상장 이력)가 탄탄한 대형 증권사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대형 증권사들이) 손이 많이 가는 중소기업 상장 작업을 살뜰히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라며 “결국 대형 증권사와 중소기업 발행사와의 알력이 불거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계열사와 대형 증권사의 만남이 항상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가치(Valuation)를 두고 이견차가 심하다. 물론 주관사는 방어적, 발행사는 공격적으로 몸값을 정하는 것이 꼭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SK바이오팜, 빅히트,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대형사들이 잇따라 ‘상장 대박’을 터뜨리며 대기업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 작업은 (주관사가) 발행사의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파악해 재무, 회계, 향후 사업계획 등을 컨설팅 해주는 종합적인 서비스”라며 “발행사와 주관사의 적극적인 소통이 성공적인 상장의 가장 큰 지름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