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M&A 늘리는 美 반도체…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해관계 복잡
입력 2021.04.07 07:00|수정 2021.04.08 17:21
    마이크론·WDC, 상반기 키옥시아 인수 가능성
    수평통합 가속화하는 낸드 시장…과점화 양상
    SK하이닉스 보유 전환사채 유동화 유리해져도
    업계선 美정부지원·격차 축소 등 위기감 커져
    • 미국 반도체 기업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인텔에 이어 마이크론까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이 연이어 설비투자·인수합병(M&A) 계획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적 지위를 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을 두고 국내 반도체 업계도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웨스턴디지털(WDC)이 일본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사될 경우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메모리 사업 인수 결정 이후 반년 만의 수평통합 딜이다. 다자 구도인 낸드 시장이 점차 과점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수 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SK하이닉스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위기감도 감지된다. 인텔이 파운드리 재진출 발표와 시기적으로 가까운 데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책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수 주체로 떠오른 마이크론의 지난 4분기 기준 낸드 시장점유율은 11%다. 낸드 시장은 D램이나 파운드리와 달리 삼성전자를 제외한 키옥시아·WDC·SK하이닉스 등 다수 기업이 2위권을 다투고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사업 인수를 추진하며 점유율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보였지만 이번 소식을 계기로 낸드 시장 지형도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는 평이다.

    • 키옥시아에 전환사채(CB)를 투자한 SK하이닉스에는 호재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낸드 시장 경쟁구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정하기 어렵다.

      키옥시아는 지난 2017년 적자로 어려움을 겪던 도시바가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를 분사하며 독립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 등과 컨소시엄을 통해 지분 49.9%에 투자한 바 있다. 현재 SK하이닉스가 보유하고 있는 키옥시아 CB를 주식 전환할 경우 1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키옥시아 인수합병(M&A)은 이르면 상반기 중 완료될 전망이다. 딜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지난해 무산된 기업공개(IPO) 작업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SK하이닉스로선 어느 쪽이든 기존 투자자산의 유동화에 유리해지는 환경이다. 지난해 무산된 공모가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CB 가치는 약 3조원 이상이다.

      그러나 마이크론과 WDC, 키옥시아가 수평통합에 나설 경우 낸드 시장 지형도는 크게 변화할 전망이다. 현재 키옥시아와 합작법인(JV)을 꾸리고 있는 WDC와 마이크론이 어떤 구조로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거래 구조와 통합 방식에 따라 반도체 시장 내 전략적 고민도 깊어질 수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 덩치를 키우는 만큼 설비투자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제거하거나 집어삼키는 방식으로 현재 경쟁 지형이 만들어졌다"라며 "산업 전체로 봤을 땐 경쟁이 완화하는 측면이 있지만 남아 있는 기업의 점유율 경쟁은 치열해지고, 삼성전자 역시 후발주자와의 격차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대규모 인프라 부양책과 반도체 산업 지원방안을 적극 논의하고 있는 시점과 겹치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1일(현지시간) 2조달러(한화 약 2260조원)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중 3000억달러(한화 약 340조원)가 미국 제조업 부흥에 투입된다.

      일각에선 마이크론이 키옥시아 인수 주체일 경우 메모리 사업 설비투자 여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 내 제조·생산 역량 확보 차원에서 공급부족이 심한 파운드리(비메모리반도체 위탁생산) 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관련 업계에선 최근 인텔이 내놓은 투자 계획이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됐을 거란 목소리가 많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던 2018년 마이크론이 미국 버지니아주에 신규 공장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라며 "미국 설비투자가 비싸단 인식을 고려하면 국가 차원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이런 이해관계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