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투자, 분할, 합병…'주주 설득'에 여전히 미숙한 국내 기업들
입력 2021.04.13 16:24|수정 2021.04.13 17:11
    금호석화·신한·KB 등 늘어나는 '주주총회 표대결'
    주주 목소리 커지면서 "설득하고, 지지 얻어야"
    국내 기업 대응은 미숙…해외에선 자문사 고용도
    • 기관투자자들의 책임투자 증가와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추세가 맞물리면서 ‘주주 설득’이 기업들의 주요 안건으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의사결정을 하면 무리없이 통과됐지만, 이젠 주주들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주주관리가 일반적인 해외와 달리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대응이 미숙하다.

      ‘주주총회 표 싸움’의 가장 최근 사례로는 금호석유화학이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개인 최대 주주인 박철완 상무가 고배당·경영진과 이사회 변화를 내걸고 주주제안 캠페인을 공격적으로 나서며 이슈가 됐다. 지난달 주총에서 결국 박찬구 회장 측의 승리로 끝났지만 끝까지 접전이 벌어졌다. 특히 시장에서 박 상무의 주주제안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면서 회사 측도 우려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이외에도 신한금융의 조용병 회장 연임건, 하나금융의 함영주 부회장의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추천 여부, KB금융의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건 등이 주주총회 표결을 앞두고 이슈가 된 바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계열사 분할·합병 등이 활발해지면서 지배구조 개편으로 주주불만이 나타날 수 있는 이슈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당장은 지배구조 개편을 예고한 SK텔레콤(SKT)이 있다. 현재로서는 SKT를 이동통신 사업회사와 투자사인 중간 지주사로 나눈 뒤 비통신 부문 계열사를 아래에 두는 인적분할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어떤 방안이든 합병 절차가 인적분할을 한다고 완벽한 해결이 나는 것은 아니다보니, 주주들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예로 SKT의 주주 입장에서는 통신사에 투자를 했는데 통신사가 아닌 지주사로 투자하게 되면서 불만을 가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 인적분할된 SK하이닉스의 투자부문과 SK㈜가 합병하면 SK하이닉스의 주주들이 주주가치 훼손이 있을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지난달엔 LG그룹의 ㈜LG-LX 계열분리와 관련해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정당성,설득력이 없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LG의 지분을 보유한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화이트박스는 주총을 앞두고 계열분리를 반대하는 서한을 보냈다. 화이트박스는 “이사회가 가족 승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주주들을 희생시키는 계획을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올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자동차그룹, 7월 합병을 앞두고 있는 GS홈쇼핑과 GS리테일도 주주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이슈들이다. 물론 GS리테일은 대주주 지분율이 65%가 넘고, GS홈쇼핑도 대주주 지분율이 36%로 높은 상황이라 우호지분 일부만 확보해도 5월 주총에서 부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2018년 당시 CJ E&M과 ‘캐시카우’인 CJ오쇼핑이 합병할 때 양사의 합병 당위성에 대한 의문이 이어지면서 주주들의 공감을 얻는 데에 애를 먹었던 사례와 비슷하단 분석도 있다. 시장에선 GS홈쇼핑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과 영업이익 등을 감안하면 일정 부부 저평가 된 구간에서 합병이 진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6년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기관투자자의 책임투자 활동이 확산됐고, 최근 들어 주주관여 활동과 행동주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준비 상태는 낮다는 평이다.

      우선 국내 대기업 구조상 해외 투자자와 소통을 담당하는 IR(Investor Relations) 부서가 생산적인 소통 창구가 되지 못하고, ‘법에만 위반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법무팀의 목소리가 더 큰 경우가 많다. 또 기업 내부에 전문 인력이 없어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결정에 대한 대응도 어렵다. 해외 주주들은 사실상 국내 기업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에서 명성이 있는 ISS나 글래스루이스 같은 의결권 자문사의 결정을 참고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관들은 잠재적인 주주가치 훼손 요소들을 국내 기업보다 넓게 보기 때문에 이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며 “기관뿐 아니라 LG화학 사례처럼 개인 주주들까지 여론을 만드는 세상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기업들도 주주 동의를 얻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민감한 문제다 보니 해외에서는 기업들이 주주관리를 돕는 자문사 및 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의결권 분쟁 대응 자문, 지배구조 개편 컨설팅 등을 전문으로 하는 자문사 시장이 상당히 크다. 현재 글로벌에서 가장 활발하게 기업을 대상으로 의결권 대응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머로우소달리, 이니스프리, 조지슨 등이 있다. 머로우소달리 등엔  ISS나 글래스 루이스 출신 인력들도 많아 특화된 대응이 가능하다.

      현재 기준 국내에는 유일하게 머로우소달리가 법인을 두고 있다. 머로우 소달리는 2019년 9월 사무소 개설 이후 삼성전자, 신한금융그룹, KB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대림산업 등의 주주총회 대응 자문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 분쟁에서 금호 측의 자문을 수행했다.

      정성엽 머로우소달리 한국 대표는 “해외 주주들 혹은 ISS나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 기관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소통하는 업무가 상당히 복잡한데, 국내 기업들은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며 “이제는 주주들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이들을 설득하고,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필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