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NH는 몰라도 한투는 잡자"…DCM 경쟁 불붙이는 중형증권사들
입력 2021.04.15 07:00|수정 2021.04.14 17:47
    키움·SK 등 차별화 내세워 약진…'톱4' 진입하기도
    네이버 등 IT대기업 진입…채권시장 변화도 기회
    인력 규모·네트워크 차이 한계…"기업도 세대교체"
    • 회사채 발행 주관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까. 채권자본시장(DCM)은 주관 상위 증권사들이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며 순위가 좀처럼 변동이 없는 시장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전통 강자’가 아닌 하우스들이 약진하면서 향후 지형 변화가 주목된다.

      1~2년 전부터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신흥 강자들이 약진하며 시장 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SK증권은 전체 DCM 주관에서 2018년부터 꾸준히 5위권 안에 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근소한 차로 ‘빅3’인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SK증권은 올해 1분기에만 SK㈜,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 E&S, SK건설, SK가스 등 다수의 SK그룹 계열사 채권 딜에 참여하며 3위를 차지했다. 2018년 SK그룹에서 26년 만에 떨어져 나온 뒤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매각된 SK증권은 이후에도 SK그룹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오히려 분리 후 SK그룹과 더 ‘편하게’ 딜을 할 수 있게 됐다.

      2018년부터 조직 개편 뒤 채권 발행 주관 경쟁에 뛰어든 키움증권은 A급 이하 대표주관을 맡으며 경쟁력을 키웠다. BBB급인 대한항공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한진과 두산그룹 계열사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달 초 단독 주관을 맡은 해태제과식품(A)은 300억원 모집에 14배 이상 수요가 몰리며 성공적으로 수요예측을 마무리했다. 이외에도 롯데카드, KB국민카드, 금융지주사 등 금융채 주관 트랙레코드를 쌓아가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이 ‘반전’을 노리는 만큼 상위권들의 견제도 시작됐다. 삼성증권은 DCM 전체 주관 순위에서 지난해 연간, 올해 1분기 모두 키움증권 아래에 위치했다. 일반회사채 주관에서는 올해 1분기 키움증권, 한양증권보다 낮은 기록을 세웠다. 삼성증권 내에서는 “키움증권에 지는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내부 RM(영업담당)들을 다그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삼성증권이 기업금융 등 전통 IB 업무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1분기 순위는 연간 전체로 보면 영향이 크진 않지만 최근 분위기는 단순한 ‘반짝’ 유행은 아니란 평가다. 2년 전만 해도 DCM에서 주관 순위가 KB·NH·한국·미래로 굳어졌었지만 지난해엔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은 전체 주관과 일반회사채 주관에서 SK증권에 4위 자리를 내줬다.

      증권가에선 미래에셋증권이 전통적인 기업금융에서 힘을 빼고 있단 의견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DCM 쪽이 ‘가성비’가 안나오는 시장이고, 미래에셋이 워낙 다른 부문에서 수익을 많이 내다보니 사실상 이쪽에 자원을 많이 투자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물론 단기간 내 상위권 하우스들의 아성이 깨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순위 변동이 꽤 있는 주식자본시장(ECM)과 달리 DCM은 상위 주관사들이 60~8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쌓아 온 기업들과의 네트워크가 최대 강점이다. DCM 주관이 IPO처럼 경쟁입찰로 주관사를 따내기 보다는 기업과 쌓아온 관계 위주다 보니 각 하우스의 ‘간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업 실무진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담당 인력 규모도 대형 하우스와 그 외 하우스들은 2~3배 차이가 난다.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이 은행과 보험 등 계열사를 갖고 있는 것도 수요예측에서 메리트가 크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업들의 주요 재무 담당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기존 네트워크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고, 회사채 시장에 새로운 이슈어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기회다. 지난해 첫 회사채를 발행한 넷마블, 올해 오랜만에 공모채 시장을 찍은 네이버까지 IT기업들이 속속 채권시장을 찾고 있다. 이에 일부 증권사들은 카카오 등 ‘잠재 대어’들에게 활발한 제안 영업에 나서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DCM 시장이 워낙 ‘그들만의 리그’가 강해서 시장이나 기업의 인식을 깨기가 쉽지는 않다”며 “다만 사실상 회사채 주관 업무가 회사 밸류가 중요하지 주관사별로 크게 특장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네임밸류가 있는 하우스가 아니어도 차별화를 갖고 영업을 하다보면 KB증권이나 NH투자증권까진 아니어도 한국투자증권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잠잠한’ DCM 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려는 물밑 경쟁은 벌어지고 있다. 특히 NH투자증권이 ‘8년 연속’ DCM 1위를 하고 있는 KB와의 격차를 줄이려는 의지가 강한 분위기다.

      2019년 연간 순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일반회사채 주관에서 KB증권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지난해는 연간 2등으로 밀려났지만, KB증권(23.95%)과 NH투자증권(20.38%)의 점유율 차이가 크지 않았다. NH투자증권은 특히 일반 회사채 주관에서 공동 주관이 아닌 ‘단독 대표주관’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 이달 NH투자증권은 GS건설(2000억원), 현대케피코(1000억원)의 공모채를 단독으로 대표 주관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DCM 순위에서 NH투자증권이 KB증권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신경전이 꽤 치열하다”며 “연말이 되면 채권 운용역들한테 (NH투자증권에서) 채권을 담아달라는 연락이 불이나게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