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는 '국내에' 産銀은 '美로'...벤처 상장 유도 '엇박자'
입력 2021.05.07 07:00|수정 2021.05.11 09:52
    국내 유니콘 잡아야 하는 거래소
    투자금 회수 고민만 하는 산업銀
    잇단 벤처 미국行에 주목받는 엇박자
    • 쿠팡에 이어 미국 증시 상장을 꿈꾸는 벤처기업들이 늘어나며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와 산업은행의 경쟁구도가 주목받고 있다. 그간 벤처기업을 대하는 데 있어, 거래소는 기업공개(IPO)를 독려하고 산업은행은 IPO보단 밸류업을 통해 회수 가능한 투자금을 늘리려고 했다. 이같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은근 경쟁구도가 있어왔다는 설명이다.

      벤처기업들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탓에 해당 신경전은 더욱 도드라졌다. 거래소는 제2, 제3의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데 반해 스케일업금융실을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온 산업은행은 해외 스팩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Exit) 방안까지도 고민 중이다.

      3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내달 6일 거래소는 증권사 기업금융(IB) 실무진들을 불러 공청회를 연다. 주제는 IPO 개선방안으로 금융감독원도 동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PO 건수가 많아지는 만큼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유념해야 할 것들을 묻는 자리로 평가된다.

      그러나 사실상 최근 벤처기업들의 해외 상장 시도에 관해 논의하고 궁금한 점을 묻는 자리가 될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짙다. 이번 공청회에는 고위급 실무진 뿐만 아니라 과장급 주니어들도 배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관사들도 발행사가 쿠팡 사례를 보고 미국 상장을 고민하는 데 상당히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국 상장을 고민하는 발행사에게 '너희는 쿠팡이 아니다'라고 설득을 하기도 한다"라며 "해외 상장을 하면 주관사를 맡던 국내 증권사는 그간 일해온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거래소의 불안감이 극에 달했음이 대내외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29일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증권사 CEO 간담회에서 "제2, 제3의 쿠팡이 미국에 상장하는 도미노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며 "국내 자본시장이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 기업에게 불리한 점이 없는지 IPO 제도나 절차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은행의 고민은 이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산업은행은 그간 스케일업금융실을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해왔다. 몇년간 다수의 스타트업에 투자해온 산업은행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해외 스팩(SPAC) 상장도 고민하는 듯하다.

      일례로 산업은행 실무진들은 국내 벤처기업을 모아 캐나다 등 해외 증시에 상장시켜주는 운용사와 접촉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최근 미국 스팩 열기가 식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부담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상장한 스팩은 767억달러를 조달하면서 전통 IPO와 유사한 수준까지 급증했다. 올해 연초 이후에도 60개가 넘는 스팩이 약 190억달러를 조달했다.

      산업은행과 한국거래소의 엇박자는 꽤 오래된 이야기란 지적이다. 스타트업에 출자한 산업은행은 굳이 IPO를 하기 보단 더욱 성장을 시켜 더 많은 투자금을 회수하고 싶다. 거래소는 국내 증시에 많은 유니콘 기업들을 상장시켜야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두 국가기관 사이에 은근한 경쟁구도가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회사들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보면 기업가치가 2000~3000억원 정도로 책정되고 600억원 정도 조달하는데, 차라리 산업은행에게 500~1000억원 투자받는 게 더 낫다는 평이 있다"라며 "회사가 괜찮다면 굳이 IPO를 하지 않고 성장시켜서 파는 게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더 이득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