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는 우후죽순, 평가지표는 혼선…ESG '조급증' 심해졌다
입력 2021.05.18 07:00|수정 2021.05.20 10:19
    급증한 관심에 ’보여주기’ ESG 관리 우려
    "ESG 워싱 방지하려면 '투명성'이 최우선"
    • 국내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에서 전례없는 속도로 커졌다. 이에 기업의 경영활동과 투자에서 ESG가 종합적인 맥락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조급하게 수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ESG를 단기 프로젝트로 여기지 않고, 또 이를 감시할 객관적인 ESG 관련 평가를 위해 정부와 시장에서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ESG에 정통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과 투자업계 등 곳곳에서 이미 ‘ESG 워싱(ESG 위장)’이 나타나고 있다”며 “ESG의 기본은 ‘투명성’으로, 경영 활동에서 어떤 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는지 공개하는 것이 ‘ESG 경영’이고, 투자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ESG 투자’다”라고 말했다.

    • 올해 들어 주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설치된 대부분의 ESG 위원회는 기존 이사회 및 사외이사가 구성하고 있다. 위원장도 사외이사 혹은 이사회 의장이 겸임하는 경우가 다수다. 이에 ‘이름만’ ESG 위원회가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이사회 내에 동일한 구성원으로 ESG위원회를 별개로 만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보여주기’에 그친다”며 “ESG 경영은 기업 활동 전반에 관해, 장기적인 관점으로 이사회가 방향을 정하고 챙겨야 하는 부분으로, 핵심은 프로젝트 진행이나 사업 전략 등 이사회의 모든 의사결정에 ESG 관점이 투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ESG 활동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으려면 먼저 ‘ESG’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ESG는 기본적으로 기관투자자들의 하나의 ‘투자 기준’으로 발전해 온 개념이다. 투자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를 제어하기 위해 기업의 비(非)재무적 요소를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하며 시작한 것으로, 엄밀히는 ‘착한 경영’이나 ‘사회적 책임(CSR)’과는 다르다.

      기업은 ESG 경영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우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이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진 외부의 ESG 평가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ESG 지표가 중요해질수록 기업들이 평가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객관성을 잃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고 ESG 시장이 발전할 수 없단 관측이다.

      과거에는 ESG 평가가 부가적인 참고 지표에 그쳤지만 이제는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중요도가 높아졌다. 대출 등 금융 거래부터 정부 사업 입찰까지 ESG 평가 요소가 반영되는 등 경영 활동 자체와 연관이 깊어지고 있다.

      예로 일반 기업의 회사채 발행에서 ESG 채권 비중이 올해 1분기 29.4%에 이른다. 일반기업의 ESG채권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2개 발행사에 그쳤지만 올해는 1분기에만 17개사가 발행했다.  1분기 중 글로벌 금리가 출렁이며 우려가 오른 시장에서도 ESG 채권이 수요 확보 및 발행 금리에서 ‘선방’하며 실제 효과가 눈에 띄었다는 분석이다.

    • 현재 ESG 채권 인증 및 등급평가는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이 맡고 있다. 신용평가사는 ‘그린워싱(환경성 위장)’ 방지를 위한 사후 평가를 강점으로 내걸고 있다. 지금까지 발행 기업들이 최상위 등급만 부여되면서 등급 평가 실효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시장 초기인 만큼 대부분 1등급을 충족하는 기업들만 발행에 나서고 있는 점과 또 사후 평가에 따라 등급 하향 가능성이 고려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회계법인 중에선 최초로 딜로이트안진이 ESG 채권 사후 평가를 발표했다. 회계법인은 SRI채권(사회책임투자채권) 부터 인증 업무를 맡아왔다. 아직까지 회계법인은 통상 기업의 ESG 컨설팅이 주요 업무고, 채권 인증 업무의 비중은 미미한 상황이다. ‘차이니즈 월’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컨설팅’과 동시에 ‘평가’를 하는 것은 이해상충 문제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신용평가에서 ESG 평가를 이끌고 있는 김형수 PF평가본부장은 "아직 국내는 ESG 채권 초기 단계로, 평가도 큰 틀은 같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인증 기관별로 기준이 달라 시장에서 혼선을 느끼기도 한다”며 “각 기관별로 독창적인 평가 기준은 다르겠지만 향후 기업들이 ‘쉽게 가려는’ 경향을 방지하려면 기본적인 기준을 통일해 명확성을 높이고, 각 기관들은 평가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ESG 시장이 초기 기틀을 잡고 있는만큼 정부의 역할 정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하반기 ‘한국형 ESG(K-ESG)’ 지표를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외에 운용되는 평가지표가 600여개에 달하면서 기업들이 혼선을 겪어 정부가 ‘가이던스’ 성격으로 제공하겠단 취지다. 다만 ESG 시장을 또 다른 ‘규제’의 틀 안으로 집어넣으려 하기 보다는, 각 주체가 시장논리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ESG 경영 및 평가를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