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지'된 상속·이혼 소송…주요 로펌도 ‘가사 부문’ 특화경쟁
입력 2021.06.01 07:00|수정 2021.06.02 09:59
    대기업 세대교체·자산가 증가로 법률 수요 늘어
    증여, 상속까지 대형로펌들 '원스톱 자문' 내걸어
    늘어나는 이혼도 타겟…재산 분할 등 전문성 중요
    '고객 사생활' 문제라 '쉬쉬' …이제는 '선점 경쟁'
    • 이혼ㆍ상속 등을 위시한 '가사 비즈니스' 시장이 커지면서 주요 로펌(법무법인)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기업 오너 일가의 세대교체, 부동산ㆍ스타트업ㆍ주식 투자 등 ‘슈퍼리치’의 증가, 그리고 이혼과 재산분할 사례의 증가가 늘어나면서다.

      해당 부문은 단순히 '가사 사건'이 아닌, 대기업 지배구조 변화와도 직접적인 영향이 있어 사건 규모도 만만치 않다. 이러다보니 주요 로펌이 점점 더 선점을 위해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김성우 율촌 변호사는 “가업승계 업무는 회계법인이나 세무사, 금융기관 등도 할 수 있지만 최근 절세나 기업 구조조정 외에도 배임이나 건강 문제 등 오너 리스크 방어, 가족간 분쟁 방지와 화합 유지가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며 "세법, 회사법, 상속가족법 등 다양한 전문가가 협업해 종합적 대책을 마련하는 역량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일단 먹거리가 가장 큰 부문은 '상속' 분야다.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삼성그룹의 상속신고를 맡은 김앤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 바 있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수년전 롯데그룹 상속분쟁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특히 2013년 성년후견(한정후견)제도가 시행된 이후 재벌가 후계구도 분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는 고령이나 질병으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성년에게 그의 재산을 관리할 후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로, 2015년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여동생이 성년후견을 신청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현재 경영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타이어가(家)의 분쟁 쟁점도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의 성년후견 개시 여부가 핵심이다.

      기업 오너들이 치매나 질병 때문에 정신적 제약 상태에 빠지면서 이를 이용한 후계 다툼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후견인이 개시되면 재산분할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보니 피상속인 주변 가족들이 '미리' 관련 준비를 위한 자문을 구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전해진다.

      비단 대기업 오너 일가가 아니더라도 몇 년 새 부동산, 주식 등 시가가 크게 폭등하면서 속재산에 대한 자기의 몫을 주장하는 상속 분쟁도 급증하는 추세다. 비교적 연령대가 낮은 유니콘 기업, 빅테크 기업의 대표 부부들이 미리 상속 자문을 받고 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치매를 앓는 피상속인들이 늘어나면서 부모가 사망하기 전부터 상속인 간의 분쟁이 시작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

      양소라 화우 변호사는 “해외 거주자가 늘면서 피상속인과 상속인들의 국적이 달라지기도 하고, 해외 자산도 늘어 상속분쟁의 범위가 국내에만 제한되지 않게 됐다”며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닌 가족간의 화합, 나아가 기업가 정신과 경영 노하우와 같은 무형자산을 대물림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부문은 이혼 분야다. 글로벌에서도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 등 기업가의 이혼은 ‘대규모 재산분할’로 언제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은 기업 CEO들을 비롯해 자산가들이 결혼 전 미리 이혼 시 재산분할과 관련해 정해두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혼인 전 계약이 이혼 시에 효력이 있지는 않아 문제가 복잡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혼 사건은 단순 유책 배우자가 생기면 무조건 이혼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사건마다 핵심이 달라 법률 이슈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합의 이혼인 경우 양육권 문제, 재산 분할 등만 해결하면 되겠지만, 재판으로 가면 법적으로 이혼 사유가 받아들여져서 ‘이혼 성사’ 여부에도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산 분할 시 얼마를 나눌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나눌지도 핵심이다.

      예로 1조원대 이혼 소송이 진행중인 SK그룹은, 노소영 관장이 이혼이 받아들여질 경우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태원 회장이 가진 SK 주식의 42.29%(전체 SK주식의 약 7.73%)에 대한 재산 분할을 요구하고 있다. SK그룹의 주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주주로서 경영권에 참여할 수 있는 점이 크다. 반대로 비상장사의 경우 자산가치 평가가 어렵고, 주식의 가치가 후에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현금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최근엔 아모레퍼시픽그룹 장녀 서민정씨와 보광그룹 장남 홍정환 씨가 합의 이혼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재벌간 이혼’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교제한 지 약 3개월 만에 약혼한 데에 이어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초고속 이혼’인 셈인데, 두 사람이 30대로 젊은 세대인 점을 감안하면 과거와 달리 재벌가의 ‘혼인 트렌드’도 ‘속전속결’로 바뀌고 있단 분석도 나온다.

      비단 재벌뿐 아니라 법률적인 측면에서 전반적인 이혼 이슈도 변화하고 있다는 평이다. 과거에는 부부사이가 ‘경제공동체’ 개념이었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맞벌이를 하면서 각자 재산을 관리하는 경우도 많아 이혼에서 재산 분할과 관련된 법률적 판단도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 현재까지는 가사부문은 다른 분야에 비해 대형 로펌 중에서 ‘특별히’ 전문성을 드러내는 곳은 없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또 사실상 대형 로펌이 대부분 기업 측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이해상충 문제로 가사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오너라도 가사는 사재로 수임료를 내야해 굳이 ‘비싼’ 대형 로펌을 쓰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는 후문이다. 다만 가사 분쟁의 특성상 배우자, 형제 등 '상대편'이 있기 마련이라 여러 로펌이 관여할 기회(?)도 있다는 평이다.

      김앤장은 상속∙자산관리팀에서 상속, 지배구조 및 가업승계, 이혼 등의 사건을 담당한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한 최재혁 변호사가 팀장을 맡고 있고, 대법원 재판연구원 조세 조장 출신 정병문 변호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김용상 변호사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권태형 변호사 등이 소속돼 있다.

      태평양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한 임채웅 변호사를 필두로 가사사건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조세 부문이 강한 율촌은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김성우 변호사와 역시 법관 출신인 전영준 변호사가 공동 팀장으로 상속·가업승계팀과 가사팀에서 전반적인 가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성우 변호사는 판사 재직 당시 롯데그룹 고(故)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한 바 있다.

      화우는 2013년 WM(Wealth Management)를 조직하고 종합 상속 플래닝(Planning)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양소라 자산관리팀장 변호사, 정재웅 조세그룹장 변호사, 강영호 금융그룹장 변호사 등이 주요 인력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국내에 순수 개인 자산만 보면 재벌에 맞먹는 중견·중소기업 오너 등 자산가들이 정말 많은데, 이들이 고연령화로 상속·승계 시장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며 "결국 가장 큰 관심사는 상속과 승계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가사 이슈는 사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니 고객들도 사건이나 로펌이 크게 드러나는걸 원하지 않는다”며 ”로펌 입장에서도 업무를 수임해도 홍보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실제 수요가 많기도 하고 기업의 다른 업무들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어 로펌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부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