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페달 밟던 카카오페이, 금감원에 밉보였나
입력 2021.07.23 07:00|수정 2021.07.26 10:10
    '크래프톤과 비슷한 연환산 산정식' 퇴짜 가능성
    135일룰 탓 일정 크게 미뤄질 듯...'금감원이 몰랐겠나'
    업계선 "무리하던 류영준 대표가 금감원에 발목"
    • 금융감독원이 카카오페이 기업공개(IPO)에 어깃장을 놓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증권가의 추론을 종합하면 '밉보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금감원이 일정, 공모희망가 밴드, 투자 논리, 청사진 등 증권신고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불만족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모기업인 카카오의 묵인 하에 상장 일정에 가속 페달을 밟아오던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의 구상에도 다소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다른 초대형 거래와 일정이 분산되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다는 평도 나온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카카오페이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사전 협의없이 전격적으로 집행된 조치였다. 금감원은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원론적인 입장 외에 부가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금감원은 세부적인 정정 요구 배경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정정 요구 전후의 정황을 통해 배경을 추론해볼 순 있다.

      우선적으로 언급되는 이슈는 공모가에 대한 부분이다.

      증권가에는 정정 요구가 나온 직후 '금감원이 카카오페이의 공모가 밴드를 확인한 후 언짢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카카오페이가 채택한 '성장률 조정 매출액 대비 기업가치'는 늘 고평가 논란이 따라다니는 공모가 산정식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1분기 순이익을 4배수로 연환산한 크래프톤이 정정 요구를 받았는데, 똑같이 1분기 매출액을 4배수로 연환산한 카카오페이에 정정 요구를 안한다면 오히려 불공정한 것 아니냐"며 "대표주관사 실무자들이 해당 건으로 금감원에게 잔소리를 들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최근 발행사들이 제시하는 공모희망가 밴드에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청약 시 개인 배정 물량을 늘린 상황에서 공모주 수익률이 하향 추세를 보인 까닭으로 추정된다. 에스디바이오센서와 크래프톤이 공모가를 한 차례 하향 조정했고, 비대면 테마에 올라타 상장을 노리는 중소ㆍ중견기업들 역시 잇따라 정정 요구를 받고 있다.

      카카오페이의 상장 일정 역시 금감원의 심기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카카오페이에 정정 요구를 한 시점이 지나치게 늦어 보인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카카오페이가 처음 신고서를 제출한 시점은 이달 초인 2일이다. 정정 요구는 무려 14일이 지난 뒤, 효력발생을 코 앞에 둔 시점에 나왔다.

      이로 인해 카카오페이의 공모 일정은 기약이 없어졌다. 8월 상장은 물 건너 갔다. 카카오페이는 미국 등 해외투자자들의 호응을 기반으로 공모 흥행을 기대했다. 해외투자자 청약을 위해선 미국 증권법상 135일 룰(rule)을 지켜야 한다. 1분기 실적보고서(3월31일 기준)를 기반으로 하는 청약은 135일 뒤인 8월13일 이전까지 납입을 마쳐야 한다.

      카카오페이의 최초 신고서에 기재된 납입일은 8월9일로, 애초부터 여유가 없는 일정이었다. 정정 요구로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 시점이 초기화된 상황인만큼, 8월 상장은 정정 요구와 동시에 물 건너 간 셈이다.

      카카오페이는 물론, 주관사단 역시 이번 정정 요구와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구체적인 수정안을 제시 제시받진 못했다. 이전 사례처럼 적당히 공모가를 낮추고,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하고, 금감원이 만족할만한 투자자 보호 요소를 추가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루 이틀에 끝날 업무량은 아닐 거란 평가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 같은 일정 연기 가능성을 몰랐을리가 없다"며 "동일 그룹 계열사가 불과 1주일 간격을 두고 조 단위 청약을 진행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떨어뜨린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 입장에선 카카오페이의 상황이 급박하진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카카오페이의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1조원이 넘는 조달금액 중 카카오페이가 올해 중 투입을 계획한 자금은 435억여원에 불과하다. 이커머스 파트너십 구축에 300억원, 오프라인 결제 인프라 확충에 135억여원 정도다.

      본격적인 자금 소요는 내년부터다. 증권사 및 디지털 손해보험사 자본 확충과 소액여신 서비스 런칭에 천억 단위의 자금이 들어간다. 일단 연내 납입만 끝마친다면 내년부터 진행될 자금 집행 일정에 큰 부담은 없다. 500억원 수준인 연내 소요 예정 자금은 브릿지론 등으로 충분히 조달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이 때문에 IPO업계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과속하던 류영준 대표가 금감원에 발목잡혔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류 대표는 카카오페이의 상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두 계열사의 상장에 모기업인 카카오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각 계열사 대표에 일임했다. '선(先) 카뱅, 후(後) 카페이'라는 일각의 전망을 뒤엎고 카카오뱅크와 불과 일주일 간격으로 공모 일정을 잡은 것 역시 류 대표의 결정이라는 후문이다.

      일정을 근소하게 붙여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가 경쟁하는 듯한 인상을 만든 것도 결과적으로 류 대표의 판단이라는 말이다. 고평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공모희망가 밴드 역시 주관사단이 산정한 후 류 대표가 의장을 맡고 있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정해진 숫자다.

      한 IPO업계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의 전격전이 일정부분 '파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결국은 불필요한 논란을 자처했다는 평가를 피하기도 어렵게 됐다"며 "LG에너지솔루션 등 하반기 예정된 다른 거래와 겹치지만 않는다면, 카카오뱅크와 일정이 분산된 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