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대상 확대 과잉 규제 논란...지주회사 '안절부절'
입력 2018.10.10 07:00|수정 2018.10.11 14:10
    총수 개인회사→지주 자회사로 규제 '차원' 달라져
    지배구조 단순한 그룹일수록 더 큰 피해
    "지주회사 권장해놓고 수직계열화하지 말라는 말"
    • 일감몰아주기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과잉 규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총수 일가가 주식 상당수를 소유하는 지주회사는 물론, 지주회사가 아닌 주요 대기업 최상위 지배회사의 자회사까지 모두 사정권에 놓인 탓이다.

      일각에서는 '수직계열화를 아예 포기하라는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순환출자 대신 지주회사를 위시한 수직적 지배구조를 '올바른 지배구조'로 권장해온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와도 어긋난다는 평가다.

      공정위는 지난 8월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 편취'(일감몰아주기) 대상을 큰 폭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감시 대상이 되는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을 20%로 통일하고 ▲총수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소유한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자회사도 규제 대상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규제 대상 기업은 현행 231곳에서 607곳으로 대폭 늘어난다.

      문제는 이 규정(개정안 제46조)에 지주회사를 위한 특례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일감몰아주기의 대상이 되는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포함) 중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그룹은 모두 22곳이고, 이들은 예외없이 모두 최상위 지배회사에 대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20%를 넘는다.

      그간 지주회사는 자회사·손자회사와의 거래가 내부거래로 잡히지 않았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때문에 지금까지의 일감몰아주기 이슈는 총수일가가 지주 체제 밖에 별도로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국한됐다.

      개정안이 도입되면 '총수의 개인 회사'가 아닌, '지주회사의 핵심 자회사'들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규제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총수-지주사-핵심자회사' 구조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한 그룹일수록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예컨데 코오롱의 경우 지금까지는 규제 대상이 아닌 코오롱글로벌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된다. 코오롱글로벌은 그룹 내 무역·건설을 담당하는 핵심 자회사로, 지난해 국내 내부거래 매출액이 3000억원을 넘었다.

      이웅렬 코오롱 회장의 ㈜코오롱 지분율은 43.5%, ㈜코오롱의 코오롱글로벌 지분은 75.2%에 달한다. 매출액이 3조원에 달하는데다 무역 등 사업구조상 그룹 내 매출을 줄이긴 어렵다. 결국 이 회장이 ㈜코오롱 지분율을 절반 이하로 낮추거나, ㈜코오롱이 코오롱글로벌 지분 25.3%를 외부에 매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룹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SK㈜가 SK인포섹 지분 100%를 SK텔레콤에 넘긴 것도 새 규제를 의식한 게 아니겠느냐는 평가가 나온다. SK인포섹의 내부거래 비중은 68%에 달한다. SK인포섹 지분 100%를 SK㈜가 가지고 있으면 향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지분을 SK텔레콤으로 옮기면 SK인포섹은 SK㈜의 손자회사가 되므로 규제에서 벗어난다.

      SK㈜가 70% 지분을 인수한 SK실트론 역시 최태원 회장이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개인 지분을 매각해 지분율을 20% 이하로 줄이더라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남아있게 된다.

      ㈜신세계, ㈜이마트, ㈜한화, ㈜두산 등 지주회사 체제 안에 속하지는 않지만, 총수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소유한 최상위 지배회사들 역시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삼성웰스토리를 비롯해 신세계푸드, 신세계인터내셔날, 한화건설, 두산건설 등이 모두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편입된다.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사실상 대기업은 수직계열화를 하지 말라는 말"이라며 "총수의 개인회사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지주회사나 최상위 지배회사의 간접 지분율까지 규제하는 건 명백한 과잉 규제"라고 말했다.

      규제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2000년 이후 정부는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총수 개인 지분을 지주회사에 통합시키며 수직계열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대기업 지배구조를 유도해왔다. 지주회사의 자회사까지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는 건 이런 기조와 반한다는 지적이다.

      같은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서 신규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규제를 상장사 기준 현행 20%에서 30%로, 비상장사 기준 현행 30%에서 50%로 강화하면서 일감몰아주기 대상까지 확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평가다. 이 기준을 따른다면, 총수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하는 지주사가 편입한 비상장 자회사는 무조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공정위는 규제 대상에 해당한다 해도 ▲내부거래가 매출의 12%이상 혹은 200억원 이상이라는 규정이 별도로 있고 ▲상증법상 해당 기업이 이익을 내야 실제로 일감몰아주기 과세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현 정부의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 정책은 크게 보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기업과 시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