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가 '주가 저평가'에 대처하는 방법
입력 2019.02.19 07:00|수정 2019.02.21 11:04
    매일 주주가치 업데이트하는 IR 시작
    6兆 자사주 매입과 함께 호평…주가 하루만에 17%↑
    "천편일률적 IR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주목"
    • "매일매일 주당 기업가치를 업데이트해 주주들에게 공개한다는 발상은, 새롭진 않지만 매우 신선합니다. 손정의 회장이니 할 수 있는 방법같기도 합니다. 자사주 매입과 어우러져 실제로 주가 부양 효과도 냈습니다." (한 금융그룹계열 증권사 연구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독특한 투자자관계(IR;Investor Relations) 방식이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매일매일 기업의 주당 가치를 계산해 현 주가가 얼마나 저평가 돼있는지 주주들이 판단하도록 하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방식이다.

      주로 분기 단위의 실적 발표로만 주주들과 소통하고, 주가에 대해 구체적인 코멘트를 삼가는 국내 IR 관행을 바꿔나가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자산가치가 중요한 지주회사들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이달 초 자사의 IR 홈페이지에 '주당 주주가치'(Shareholder Value per Share)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었다. 이 페이지에서는 소프트뱅크그룹이 보유한 자산가치를 매일매일 SOTP(Sum of the Parts;항목별 합산) 방식으로 평가하고, 여기서 순부채를 제외해 '적정 주가'가 얼마인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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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뱅크 IR '주당 주주가치' 페이지 갈무리

      예컨데 지난 8일 장 마감 후 기준 소프트뱅크그룹 주식의 기업가치는 주당 2만2977엔(약 23만4000원)이고, 주당 순부채는 3327엔이었다. 알리바바, 소프트뱅크코퍼레이션(분리상장된 통신사업부), 미국 스프린트, 야후 재팬 등의 상장 지분 가치는 매일 업데이트되고, 스프트뱅크비전펀드와 순부채 등 회계상 평가가 필요한 항목은 분기별로 업데이트된다.

      이를 감안한 현재 주당 주주가치는 1만9651엔(약 20만원)이라는 게 소프트뱅크그룹의 입장이다. 이날 도쿄거래소에서 소프트뱅크그룹 주식은 주당 1만엔 안팎에 거래됐다. 이를 통해 투자자는 현재 소프트뱅크 주식가 주주가치의 절반 정도 수준의 주가로 거래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는 지난해 말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 주식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고 발언한 이후 가시화했다. 당시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의 기업가치가 21조엔(약 214조원)에 달하지만 시장에선 9조엔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손 회장 주장의 근거를 객관화·수치화해 모든 주주들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게 '주당 주주가치' 페이지인 셈이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새로운 IR을 선보임과 함께 총 1억1200만주, 6000억엔(약 6조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소프트뱅크그룹 주가는 7일 하루에만 17% 급등했다. 통신사업부 분할상장이 흥행에 실패하고, 최근 3개월간 주가가 40% 가까이 급락하며 주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던 시점에 '반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 물론 이 같은 시도에는 비판도 뒤따른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덴 여러 방법과 잣대가 있는데, 특정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한정하고 이를 기준점으로 주주들에게 제시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비상장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도 일단 '주당 주주가치'에 주당 2474엔의 가치로 반영이 돼있지만, 구체적인 산정식은 밝히지 않고 있다.

      다수의 자회사와 투자자산을 보유한 순수지주회사의 주가는 보유 자산의 주당 순자산 가치의 합계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보유 지분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보유 자산을 현금화하려면 시세보다 할인해 대량매매에 나서거나,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경영권 매각 방식을 취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뱅크그룹의 새 시도는 정형화된 국내 기업들의 IR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일깨워준다는 분석이다. 주주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나 소통의 방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계열사를 100% 자회사로 만드는 금융지주회사들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자회사 중 상장사가 많은데다 소프트뱅크식 사업부 분할 상장을 검토 중인 SK그룹 등은 참고할 만한 방식"이라며 "천편일률적인 IR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투자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