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사, 교보생명 관여 난색...'지금 무슨 이점이 있다고'
입력 2019.03.11 07:00|수정 2019.03.12 10:00
    단순한 FI로 나서는 건 이사회 설득 어려울 전망
    경영권 인수는 자금 부담 커…4대 지주도 감당 여력 無
    주식 스왑시엔 신 회장이 개인 최대주주...당분간 관망할 듯
    • "교보생명보험이요? (주주간 갈등 등) 내부 정리도 제대로 안된 것 같은데 지금 만나서 무얼 하겠습니까." (A 금융지주사 고위 임원)

      갑자기 교보생명 지분 인수의 주요 후보로 떠오른 4대 대형금융지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국내 3위, 자산100조원의 생명보험사에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주주간 갈등이 심해져가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신한·KB·하나·우리 등 국내 대형 4대 금융지주에게 '생명보험업'은 언제나 아픈 손가락으로 통한다. 은행을 뒤에 업고도 5위권 내 진입한 회사가 없다. 단숨에 '빅3'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교보생명보험 지분 인수는 사실 매력적인 카드다.

      문제는 현재 교보생명 지분 구조에서 비롯된 갈등엔 4대 지주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교보생명 갈등은 신창재 회장이 경영권은 유지하고 싶지만,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수익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자금은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 신창재 회장의 경영권 유지가 필수불가결한 거래 전제조건이라면, 4대 금융지주사는 신 회장의 백기사 혹은 또 다른 재무적 투자자(FI) 역할을 해야 한다.

      교보생명 지분 가치는 시점과 방식에 따라 다소 편차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30% 안팎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들어갈 자금은 최소 1조5000억원에서 2조원 안팎으로 언급된다. 이 정도 대규모 자금을 들이고도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다면, 지주 이사회에서 이 투자를 승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지적이다.

      지분을 매입할 때 가치도 이슈다. 현재 FI들은 수익률을 감안해 주당 40만원 안팎에 지분을 매입할 것을 신 회장에게 요구하고 있다. 주당 40만원으로 계산한 교보생명의 기업가치는 8조2000억원에 달한다.

      업황 침체로 인해 보험사의 가치(밸류에이션)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현재 상장 생명보험사 5곳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7배에 불과하다. 교보생명의 자기자본은 10조원 수준으로, 상장시 예상 시가총액은 5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최소 60%의 프리미엄을 줘야 하는 것이다.

      한 증권사 금융담당 연구원은 "높은 프리미엄은 경영권 인수가 전제되고, 향후 잔여 지분을 훨씬 낮은 가격에 인수해 초기 인수 가격을 희석시킬 수 있을 때에나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이라며 "신 회장이 협의를 통해 FI의 지분 매각 가격을 시장 가격 수준으로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행여 신 회장과 FI의 공동매각이 성사된다고해도 문제가 여전하다. 이 경우 최소 3조~4조원대의 초대형 인수합병(M&A) 거래로 커지는데, 지금의 4대 지주에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간 신창재 회장의 대응방향을 감안하면 공동매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지부터 지금은 담보하기 어렵다.

      그나마 네 곳의 금융지주 중 가장 자금 여력이 충분한 KB금융지주로 꼽힌다. 그러나 생명보험업에 대한 그룹 내 시각 자체가 아직은 부정적이다. 교보생명보다 훨씬 지배구조나 수익성 면에서 M&A에 용이한 오렌지라이프 인수전에서조차 마지막까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재무 전문가 출신으로 셈에 밝은 윤종규 회장이 굳이 지금의 진흙탕에 발을 담글 거라고 보는 시각도 많지 않다.

      신한금융은 오렌지라이프 인수 이후 생명보험사 추가 인수에 대한 수요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신한금융은 지난해 추진했던 삼성생명 보유 생보부동산신탁 지분 인수가 교보생명의 비협조로 어그러진 이력이 있다. 이로 인해 신한-교보 양측 회사간 관계도 소원해졌다. 이 상황에서 신한금융이 나서 굳이 교보생명 인수에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하나금융의 경우 조금 숨통이 트였다곤 하지만 높은 이중레버리지비율이 부담이다. 지난해 말 기준 125.6%에 달한다. 자회사 추가 출자 여력은 2조원 수준인데, 현재 진행 중인 롯데카드 인수전에 일단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롯데카드 인수에 성공할 경우 추가 출자 여력이 사실상 사라진다.

      그룹 내 생명보험업의 위상도 높지 않다. 하나생명엔 2015년 250억원의 증자를 해준 게 마지막 지원이었다. 이후 금융투자에는 1조2000억원의 증자를 감행했다. 최근 하나손해보험 상표를 등록하며 오히려 손해보험사 인수에 관심을 두는 모양새다.

      비교적 교보생명과 친밀한 관계인 우리금융지주는 당장 인수전 참여가 물리적으로 어렵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말 설립된 순수지주회사로 내부 현금이 제로다. 올해까진 내부등급법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에도 벅차다는 평가다.

      게다가 보험사 지분 인수의 경우, 지주 자기자본의 3%를 넘는 금액은 모두 보통주자기자본에서 차감된다. 자기자본 21조원의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인수 규모가 6300억원을 넘어가면 곧바로 보통주자본비율이 급격히 악화한다. 우리금융이 당분간은 나서기 어려운 구조다.

      거래구조를 잘 짜서 현금이 들지 않는 지분 교환(스왑) 방식을 택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신 회장의 지분율은 33%로, 기업가치 5조원 가정시 개인 지분 가치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치로 지분을 스왑하면 4대 지주 어느 곳이든 신 회장이 개인 최대주주가 된다. 기존 지분율이 희석되는데다 최대주주까지 교체되는 거래에 주주들이 쉽사리 동의하긴 어려울 거란 지적이다.

      무엇보다도 '개인 대주주의 탄생'은 오래전 교보생명과 신한금융 지분 스왑이 거론될 당시에도 문제로 떠올랐고 감독당국마저 우려하는 사안으로 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무엇보다 지금 교보생명이라는 짐을 떠안으면 주가에 영향이 있을 것이고, 주주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은 직접적인 연관을 부인하고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4대 지주에겐 최고의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