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산 없는 배당 요구, 올해는 예고편?…현대차 향한 엘리엇의 진짜 노림수는
입력 2019.03.21 07:00|수정 2019.03.20 18:40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현대차 배당안 지지
    엘리엇, 초 고(高)배당 요구에 현대차도 고배당 맞수
    엘리엇도 배당 수혜, 투자자 눈높이 높아진 효과
    내년 주총이 본게임?…"현실적 대안 마련하면 승산도"
    • 현대차그룹과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공방전은 주주들의 손에 결론이 난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배당과 관련해서 모두 '현대차'를 지지하는 가운데 엘리엇의 배당 요구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엘리엇이 '단기 시세차익을 위한 투자자'라는 오명까지 쓰면서 다소 비현실적인 배당안을 꺼내들었지만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일단 현대차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한층 높이는 데 성공했다. 내년 또는 내후년을 내다본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이 현대차에 제시한 배당안은 현대차가 제시한 배당 규모의 약 7배에 달한다. 우선주를 포함한 배당 총액은 약 6조원으로, 현대차 지난해 순이익의 3배가 넘는다. 결국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현금에, 곳간의 현금까지 보태서 주주들에게 나눠달라는 엘리엇의 파격적인 요구를 현대차가 받아 들이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현대차 나름대로는 매년 꾸준히 배당 규모를 늘리는 등 주주환원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수년째 내리막을 달리는 실적도 부담이지만, 미래차 시장에 수 조원을 쏟아 부어야 하는 숙제도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 5위인 현대차는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반드시 포트폴리오에 담아야하는 대형주 중 하나다. 현대차는 주요 지수에 편입돼 있기 때문에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현대차 주식을 통해 단기간의 시세차익을 노리기 보단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한다.

      현금을 풀어 배당금을 많이 주겠다는 정책을 마다할 투자자는 많지 않다. 다만 적어도 수년 또는 10년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하는 투자자라면 회사의 과도한 현금 유출이 달갑지만은 않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대부분도 '과도한 현금 유출에 대한 우려', '미래 사업 투자 재원 확보가 우선' 등을 주요 논리로 내세우며 현대차 배당안에 투표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고했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엘리엇의 배당안이 최초 공개 됐을 때부터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엘리엇이 승산은 없어 보인다"며 "배당안을 제외한 정관변경, 사외이사 선임 등 나름 합리적인 제안은 표 대결을 기대해 볼만 하다"고 했다.

    • 현대차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엘리엇이 현재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는 없어 보인다. 엘리엇이 현대차와 배당을 두고 진정성 있는 싸움을 펼칠 마음이었다면, 지금보단 현실적인 안건을 제시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엘리엇이 오히려 의도한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엘리엇은 지나치게 앞서 나갔지만, 그 결과 주주들의 눈높이는 한층 높아졌다. 현실성을 떠나서 현대차가 3000원의 배당을 제시할 때, 엘리엇은 2만원이 넘는 배당을 요구했다.

      주주들이 현대차의 제시안에 찬성한다면 올해는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내년의 현대차 배당 규모가 올해보다 줄어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번 높아진 배당 성향은 다시 떨어지기 어렵고, 주주들의 극심한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차는 이번 주총을 통해 외부 주주들로부터 언제든 공격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고, 자의반타의반으로 매년 지금보다 많은 주주환원책을 내놔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높은 배당을 포기한 주주들에게 기업의 성장을 반드시 증명해야 하는 숙제도 남았다.

      엘리엇이 현대차의 주주로 계속 남아있는다면 손해 볼 상황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현대차의 배당규모를 늘리는 효과를 봤다. 만약 엘리엇이 내년 주주총회에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대차를 압박할 경우, 올해보단 주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더 수월할 수 있다. 지금은 회사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통해 '명분'을 쌓았고, 내년 주총에서 본격적인 표 대결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엘리엇이 보다 장기적으로 현대차에 접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며 "올해 주총은 본 게임을 앞둔 엘리엇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개편이 숙원 과제다. 지난해 지배구조개편 작업에 한차례 실패한 현대차는 주관사들과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다. 현대차 지배구조개편에 제동을 걸었던 엘리엇은 주주들의 반발을 이끌어 내며 현대차 저격수 역할을 했다. 이르면 오는 하반기 또는 내년 초, 현대차의 지배구조개편을 두고 또 다시 공방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을 추천했다. 이 또한 주주총회에서결론이 난다. 배당 안건과 다르게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을 두고 일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엘리엇 추천 인사가 현대차 또는 현대모비스의 사외이사로 포함되면 내년 배당 정책 수립과 지배구조개편 과정에서의 큰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곧 현대차 또는 정의선 부회장이 의도대로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장래 경영계획을 수립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모비스 이사진 정원을 늘리는 정관변경을 통해 사외이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고, 현대차는 엘리엇을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엘리엇 추천 사외이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글로벌 기업에서 활약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현대차는 일부 후보에 대해 '이해상충'과 '경영능력 의심'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낸 상태다. 하지만 현대차 또한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 외국인 전문가를 사외이사에 포함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추천 주체를 떠나서 현대차가 '자기 사람'이 아닌 글로벌 경영 감각을 갖춘 전문가를 이사진에 포함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